박명진
1959년 인천 출생
월간문학 신인상 희곡 당선
중앙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중앙대 강사
저서 '한국 희곡의 이데올로기'
초등학교 때였던가. 인천 송도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나는 밀짚모자를 멋드러지게 쓰고 가족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아마 기병대 대장으로 연기했던 존 웨인을 흉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알랭 드롱처럼 폼 나게 수영하려다가 기어코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고, 아깝게도 밀짚모자를 잃어버렸다. 웩웩거리며 짠물을 토해내고 짐을 챙기고 있을 때, 초라하게 눈물 머금은 모자가 물가로 밀려와 출렁거리고 있었다. 모자를 두른 까만 띠만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반짝이고 있을 뿐. 그때 그 모자를 두르고 있었던 띠는 왜 그토록 처연하게 울부짖었던 것처럼 기억되는 걸까. 혹시 그때의 그 모자띠는 나운규나 김승호나 또는 김진규가 연기했던 영화필름은 아니었을지.
영화는 앨범 뒤쪽에 꽂혀있는 사진 필름을 닮았다. 궁핍했던 영혼의 시대, 앨범속의 필름은 그 시대의 아픔과 기쁨을 무성영화처럼 증언하고 있다. 나에게 한국영화는 겨울 바람에 갈라 터진 손등과 같다. 피부는 거북등처럼 균열되고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새빨간 핏방울. 그러나 떨어져 버리는 딱지 아래에선 분홍색을 띠고 돋아나는 새살들. 상처가 덧나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그 손등의 딱딱한 각질을 벗기고 또 벗긴다.
가능하다면, 나는 영화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영화를 말하고 싶다. 문학과 연극이 작가에 의해 미리 고정되어 있는 미적 완성품이 아니라 대중과 함께 시대를 이파하는 '담론실천'이라고 했을 때, 영화 역시 고난한 현실을 버텨내는 우리 자신의 '육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나를 선택해 준 심사위원께 감사 드린다. 한국영화를 좀더 사랑하라는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 엉성한 초고를 성의 있게 보아준 중앙대 국문과 창작캠프 후배들과 이명재 선생님은 이 영광의 보이지 않는 후원자이다. 앞으로 열심히 함으로써 이들의 도움에 보답을 해야겠다. IMF와 싸우고 있는 아내, 그리고 새림이 새결이와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