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논쟁은 정교하고 건조하다. 증거와 논증이 있을 뿐, 감정이나 상상력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러나 황우석 논쟁은 정치적인 모양새까지 띠고 있다. ‘국익’과 ‘애국심’, ‘양심’과 ‘원칙’ 등등은 우파와 좌파가 각각 많이 쓰는 낱말들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며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강조하는 황 교수의 말은 우리 안의 오른쪽 정서를 뭉클하게 한다. 반면 생물학정보센터(BRIC) 중심인 젊은 과학도들의 냉철한 반론은 예외 없는 원칙과 진리라는 왼쪽의 마음을 잡아끈다.
이 점에서 황우석 논란은 드레퓌스 사건과 많이 닮았다. 드레퓌스는 1894년 군사기밀을 독일에 팔아넘긴 혐의로 추방당했다. 그러나 드레퓌스는 범인이 아니었다. 조사할 때마다 드레퓌스의 누명이 속속 드러났음에도, 군부와 법원은 그의 무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진짜 범인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독일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프랑스 군부 스스로 정의롭지 못했음을 인정하기가 두려웠던 탓이다. 게다가 드레퓌스는 지탄받던 유대인이었으며 동료 장교들도 탐탁잖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드레퓌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운다면 군대와 프랑스 법원은 결점 없이 정의로운 상태로 남을 터였다. ‘국익’에 목마른 여론도 이를 원했다.
증거와 법률에 따라서만 판단을 내려야 할 법정이 여론과 정치에 휘둘렸다는 점에서 드레퓌스 사건은 과학의 논리가 국익을 앞세운 대중과 힘겨루기 하는 황우석 사태와 닮았다. 황우석 사태는 이제 1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드레퓌스 사건이 막을 내리기까지는 12년이 걸렸다. 드레퓌스 사건은 과거의 진실을 밝히면 해소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황우석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황 교수는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성과에 따라 논문 파문이 ‘고의적 실수’였는지 ‘조작’이었는지에 관한 판단도 다시 춤을 출 터이다. 아무쪼록 발전적인 쪽으로 논란이 정리되었으면 좋겠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timas@joong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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