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어기려고 해본 적 있습니까? 법을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혹은 법의 타당성에 대해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제 생각에는 많은 학생이 ‘없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떤 법률을 정할 때 그 법의 타당성에 대해서 누군가가 학생인 여러분에게 물어본 적도 없을 것 같습니다.
‘법률’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머리가 아플 겁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법률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본 적도 고민을 해보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법률’이라고 하지 않고 일단 ‘규율’이라고 하겠습니다. 규율이라고 하면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이 많을 겁니다. 이미 여러분은 수많은 규율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부모님이 취침시간이나 식사 시간을 정해주는 일, 외출을 할 때 부모님께 미리 말씀을 드려야 하는 일, 밖에서 잠을 자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다짐, 교복을 입어야 하는 일,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고, 정해진 수업을 받아야 하는 일, 심지어 학원에서 정해진 시간에 수업을 듣고, 정해진 시간에 쉬어야 하는 것도 규율이겠지요.
그런데 그 규율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것일 수 없다면 고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인데 실수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잘못된 것일 때’를 상상하는 일을 나쁘게 보지는 말아주세요. 중국의 마오쩌뚱은 일분위이(一分爲二)라는 말을 하면서 아무리 확고해 보이는 사실이라도 잘 따져보면 또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에겐 문제 상황이 주어졌습니다. 잘못된 규율이라도 꼭 지켜야 할까요? 바로 이런 문제 상황이 소크라테스에게도 발생했습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소크라테스가 처한 갈등 상황은 법을 지킬지 어길지에 대한 고민은 아닙니다. 법에 의해 구형된 형벌을 받아야 할지, 회피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지요. 넓게 본다면 그것은 규율을 지켜야 할지, 지키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사형을 구형받은 소크라테스에게 친구 크리톤이 찾아옵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설득합니다. 그 구형은 잘못되었으므로 함께 탈출하자고요. 바로 이때의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를 기록한 책이 플라톤이 지은 ‘크리톤’입니다. 결론을 먼저 얘기해 보자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리톤은 ‘탈출을 해서는 안 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설득됩니다. 도대체 소크라테스가 뭐라고 이야기했기에 감옥까지 찾아온 크리톤이 설득되었을까요?
과거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었습니다.
“법은 국가와의 약속이다. 나는 법에 따라 재판을 받았고, 그것이 나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일지라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은 2002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정 요구에 의해 교과서에서 삭제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사회 교과서에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셨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2004년 11월 헌법재판소에서 수정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왜 탈옥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이 쓴 또 하나의 작품을 같이 읽어봐야 합니다. ‘변명’이라는 작품인데요,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죄목을 밝히고, 소크라테스가 거기에 대해 변명을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작품이 더 있습니다. 역시 플라톤이 지은 ‘향연’이라는 작품인데요,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에로스(사랑)’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입니다. ‘향연’에는 소크라테스가 인간에 대해, 지혜에 대해,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향연’을 읽어두면 소크라테스가 크리톤과 대화를 나눌 때 왜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세 작품을 함께 읽으면 소크라테스의 놀라운 혜안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통째로 훔쳐내는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을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모든 이야기를 여기서 통째로 풀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 몫은 여러분의 것이니까요. 다만 여기서는 소크라테스가 감옥에서 느꼈을지도 모를 갈등 상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아래에 제시된 두 가지 갈등 상황을 잘 읽어보고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 보세요. 만약 그 고민을 풀어낼 수 없다면 여러분은 꼭 ‘크리톤’을 읽어봐야 할 겁니다.
사랑이냐, 법이냐 - 배경은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차도입니다. 차도의 바깥쪽에 인도가 있습니다. 그 인도 위에 철수가 서 있습니다. 철수는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영희가 길 건너편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희는 앞을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희가 위험천만한 차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도로에는 차도와 인도를 시각 이외의 감각으로 구별할 어떠한 표식도 없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이 함부로 차도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규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규율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바로잡히지 않아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철수는 차도로 뛰어들어 영희를 구해야 할까요? 안타깝게도 철수는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이수봉 학림 필로소피 논술 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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