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전교조교사 참여로 점차 과격화
“대통령 하야” “정권타도” 극한표현 난무
인터넷 포털에 행동지침 띄우고 분신도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불법 집회로 변질됐다.
이달 2일 이후 평화적이던 집회와는 달리 토요일(24일)에 진행된 17번째 집회는 도로 점거 등 불법 시위로 번졌다. 일요일인 25일 집회 때도 시위대의 도로 점거로 도심 교통이 마비됐다.
욕설이 난무하는 데다 경찰과 충돌하는 일까지 생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00여 명 청와대 행=25일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시민 2500여 명 가운데 1000여 명은 이날 오후 6시 반경부터 청와대 행을 시도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오후 5시 15분경 삼보일배를 하며 광화문 쪽으로 이동하자 일부 참석자가 “따라가자”고 나서면서 분위기가 과격해졌다.
1시간 뒤쯤 누군가 “뒤쪽이 뚫렸다” “청와대로 가자”고 외친 뒤 흥분한 참가자들이 청계광장을 빠져나가 경복궁역 인근까지 진출했다. 시위대 1000여 명은 세종로를 점거하고 ‘독재타도’ ‘고시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복궁역 인근에서 경찰에 저지당한 이들은 청계광장으로 방향을 돌렸고 오후 7시경에는 서울역까지 이동했다.
오후 9시경에는 서울시청 앞쪽으로 되돌아와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마비시켰다.
전북 전주에서는 ‘2MB 탄핵투쟁연대’ 소속 회원인 이모 씨가 25일 오후 6시경 서노송동의 한 백화점에서 ‘쇠고기 반대,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을 기도했다.
하루 전 24일 청계광장 집회에서는 참가자 3500여 명이 경찰 봉쇄를 뚫고 세종로 사거리로 뛰어나가 25일 새벽까지 교보문고 부근 왕복 8차로를 점거했다.
▽정치성 뚜렷해져=문화제 성격의 촛불집회는 주말을 기점으로 정치적 성격이 짙어졌다.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정치 구호가 자주 나왔다. 집회 참가자들은 25일 가두시위에서 ‘이명박 하야’ ‘미친소 철회’ 등의 구호를 외쳤다.
청계광장 집회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한나라당 정권을 말살시켜야 한다”는 발언이 쏟아졌다. 이 같은 정치 구호는 24일 집회에서 ‘이명박은 물러나라’ ‘청와대로 쳐들어가자’는 함성과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 참가자는 이 대통령을 쥐에 비유해 욕을 퍼부으며 “죽어라”라고 외쳤다.
그동안 촛불집회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광우병 쇠고기 반대’ 등의 구호가 많았다. 참가자들의 발언도 “식탁 먹을거리와 학교 급식이 걱정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문화제 성격을 강조하면서 자취를 감췄던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시위대는 ‘구국기만 서민말살’ ‘4개월이 100년이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도로를 점거했다.
▽노조와 대학운동권 가세=경찰은 촛불집회의 양상이 달라진 데 대해 시위 전문가들이 가세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촛불집회를 ‘효순 미선양 6주기’인 6월 하순 이후까지 끌고 가기 위해 시위 전문가가 가세하는 듯하다. 시위가 더욱 과격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24일 집회에는 당일 여의도에서 결의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 1만9000여 명 중 일부와 전국교사대회를 마친 전교조 교사가 참가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종교인 모임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 회원들도 100일 순례를 마치고 동참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주말 집회 참석자를 보면 그동안 집회를 주도했던 중고교생이 확실히 줄었다. 20, 30대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포털 사이트 자유토론방 ‘386 모임’을 중심으로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출신이 24, 25일 불법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과거 전대협, 한총련에서 활동하신 경력 있으신 분들 모집한다’고 공지하면서 시위를 주도한다는 얘기.
실제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는 “청와대 진입로에 도착하면 모여 있지 말고 지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 누군가 구호를 시작하면 함께해 달라. 우리는 본대의 행진을 돕기 위해 외곽을 흔드는 역할”이라며 청와대 진입로와 행동지침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불법 집회에 엄정 대처=검찰과 경찰은 주말 집회를 불법 시위로 이끈 주동자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는 등 엄정 대응하기로 했다.
검찰과 국가정보원, 서울경찰청은 25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도로 점거 및 교통 방해 등 불법 집회에 엄정 대처하고, 경찰관 폭행 등 과격한 폭력을 엄단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국민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24일 밤에 발생한 도로 점거, 교통 방해 행위는 도를 넘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며 “연행된 사람들의 신분 및 가담 정도를 확인해 책임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인터넷 확산 강경진압 동영상
작년 3월 시위 찍은 것 판명▼
경찰 “누군가 악의적 유포”
경찰이 촛불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장면이라며 25일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퍼진 동영상은 지난해 있었던 다른 시위 장면임이 확인됐다.
문제의 동영상은 두툼한 겨울옷을 입은 진압 경찰이 물대포로 시위대에 물을 쏘고 진압봉을 휘두르며 진압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백골단 동영상’, ‘백골단·물대포 강경진압’ 등의 제목 아래 누리꾼의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글과 함께 블로그 카페 게시판을 통해 퍼졌다.
누리꾼들은 이 동영상이 25일 새벽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시위 진압 과정을 담았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지난해 3월 10일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장면을 담은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집회를 경찰이 강경 진압한 듯이 호도하기 위해 누군가 악의적으로 유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경 진압 논란에 대해 경찰은 “시위대가 도로에 주저앉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닥에 물을 뿌렸고 이 과정에서 약한 물줄기를 막아선 일부 집회 참가자가 흠뻑 젖기도 했다. 하지만 진압을 목적으로 시위대를 겨냥해 물을 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