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모럴 해저드 무방비
정부 입김에 약한 조직문화가 ‘禍’ 키워
애초부터 외풍 덜타는 포스코와 대조
한국 통신업계를 대표하는 KT그룹이 2002년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이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KT의 최대 자회사인 KTF의 조영주 전 사장이 수뢰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모(母)기업인 KT의 남중수 사장도 수억 원대의 수뢰 혐의로 사법처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KT그룹을 이끄는 핵심 최고경영자(CEO) 두 명이 모두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것이다.
남 사장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면 이미 사퇴한 조 전 사장에 이어 남 사장의 퇴진도 불가피해진다. KT-KTF 합병 등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경영공백이 커져 KT그룹이 장기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왜 이런 심각한 경영진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했을까.
○ 외풍에 약한 경영환경이 발목
두 사람의 수뢰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이 돈이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권 로비에 쓰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외풍(外風)에 약한 KT의 경영환경이 두 CEO의 발목을 잡은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2002년 민영화된 KT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현재 정부의 지분이 단 한 주도 남아 있지 않은 완전 민영화된 회사다. 소액주주의 비율이 53.25%를 차지하고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 외국계 투자회사를 제외하고는 지분 5% 이상의 주주가 없는 ‘주인 없는 회사’ 구조다.
KT는 민영화 이후 소유의 분산과 이사회 중심의 경영체제를 갖췄다는 점에서 선진적인 지배구조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주인 없는 회사’가 외풍에 휘둘리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가 이번에 드러났다.
외풍에 약한 KT의 구조는 뿌리가 깊다.
KT는 과거 주요 인사 때마다 “○○○가 여권의 ○○○에게 줄을 댔다” “○○인맥이 움직이고 있다”는 식의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국회와 사정기관에는 KT의 특정인을 공격하는 투서가 잇따랐다. 2003년 1월에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KT의 자회사인 KTF와 KT아이컴의 통합법인 사장 선임과 관련해 KT 사장 출신인 이상철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가운데 사장추천위원회가 이전 관례보다 한 달여 빨리 남 사장의 연임을 결정한 데 대해서도 “새로 탄생할 정권의 입김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KT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직도 KT를 공기업으로 생각해 인사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외부의 권력이 회사의 경영권과 연결돼 있어 이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우봉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KT는 정부의 동의나 묵시적인 허락 없이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구조였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도 CEO 개인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이와 같은 KT의 구조적 특징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주인 없는 회사’된 민영화의 한계
KT의 민영화에 따른 경영 성과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KT는 통신시장 정체로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사업 구조 개혁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시내전화의 비중을 2002년 매출의 61%에서 2007년 49%로 줄인 반면 초고속인터넷과 솔루션 사업 등 신사업은 지난해 각각 2002년 대비 35%, 523% 성장시켰다. 임직원 수도 2001년 4만4094명에서 2006년 3만7514명으로 15% 줄이는 등 방만한 경영구조를 바꾸려는 노력도 해 왔다.
하지만 ‘주인 없는 회사’가 된 민영화의 한계는 이런 경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경영권을 지키기 힘든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KT와 마찬가지로 ‘민영화된 공기업’이지만 상대적으로 인사 때 외풍을 훨씬 덜 받는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와도 구별된다.
두 회사의 조직문화가 크게 다른 것은 포스코가 과거 공기업인 포항제철 때부터 외부의 인사 청탁이 잘 먹히지 않는 풍토가 정착된 반면 KT는 수시로 CEO가 바뀌면서 외풍에 취약한 데다 통신사업의 특성상 정부 규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 과거 기아자동차의 총체적 도덕적 해이와 부실에서 드러났듯이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회사의 경우 자칫 내부통제가 허술해지는 구조적 한계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임영재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민영화된 공기업이 지배구조에서 재벌 계열사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사외이사 도입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부 통제 시스템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