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 지도자의 높은 지지율이 오히려 갈등 해소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처럼 미국 정계와 정보당국 등에서 두루 신뢰받는 거물급 인사를 일종의 비밀 특사(backdoor messenger)로 활용하라.”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 겸 보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최고경영자(CEO)인 케네스 와인스타인 소장(58)이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북중러 3개국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3각 협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서둘러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국 최고권력자의 임기가 많이 남은 데다 둘의 지지도도 견고해 서로가 서로에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며 비밀 특사를 언급했다. 지난달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다. 또 집권 자민당 당규를 고쳐 4연임에 도전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22년 5월까지인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약 3년이 남았다.
1951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시카고대 학사,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를 땄고 옛 소련 및 동유럽 문제를 집중 연구했다. 조지타운대 등에서 강의했고 2011년부터 허드슨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국이 한일 갈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은 북한뿐 아니라 이란,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해결해야 할 외교 현안이 너무 많아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 한일 갈등은 역사 및 양국 국민의 감정이 결합된 대단히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다. 특히 이번 갈등이 공론화하고 언론에 집중 보도되면서 양국 국민의 감정만 끓어오르고 있다. 누군가는 이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전직 미 대통령 같은 거물 인사를 일종의 비밀 특사(backdoor messenger)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처럼 정치권, 정보당국, 군에서 두루 존경받는 인물이 필요하다.”
-북한이 최근 계속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도 꾸준히 비난해왔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문제 삼는 건 어처구니없다(preposterous). 한미일 3국 안보 공조를 흔들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사일 발사는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에 앞서 자신들이 여전히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신호를 미국에 보내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가 이 정도로 위협적인 상대인 만큼 어서 협상을 재개하자’는 일종의 촉구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이 협상을 오래 끌수록 합의 가능성은 점점 낮아질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한국 영공 침범,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지난달 말 3개국의 도발은 공교롭게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에 맞춰 이뤄졌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을 갈라놓으려고 일부러 그가 아시아에 왔을 때 이런 일을 벌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가능성이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을 갈라놓으려는 시도는 워싱턴 정가나 백악관 내부에서도 늘 언급되는 주제다. 권력 다툼과 파벌 싸움은 어디에서나 벌어진다. 그러나 볼턴에 대한 대통령의 신임은 굳건하며 볼턴은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참모일 뿐이며 최종 결정권자는 대통령임을 늘 인식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에 동참해야 하나.
“그렇다. 중국은 안보 분야에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화웨이가 5세대(5G) 통신망을 통해 세계 각국의 민감한 정보들을 빨아들이면 중국 당국은 불법으로 이를 들여다 볼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미국과 동맹국이 이런 상황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국이 반(反)화웨이 움직임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이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해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동맹은 짐을 나누는 것(sharing the burden)을 뜻한다. 미국의 ‘세계 경찰’ 노릇에 진저리를 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재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선택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은 타결 가능성이 있나. 양국의 환율전쟁도 시작됐다.
“낮다. 중국은 내년 11월 미 대선 후 새 행정부와 협상을 벌이겠다는 계획으로 미국에 강경하게 나오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민주당 대선 지지율 선두주자들의 전략은 결국 ‘반(反)트럼프’로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2016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가 패했다. 4년 전 전략을 또 들고 나와서 현직 대통령을 이기기 쉽지 않다.
또 최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당 젊은 의원들이 ‘사회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부유세, 탄소 배출 제로(0) 등 급진적 정책을 주창하고 있는 것도 중서부 보수 성향 유권자나 중도 유권자들을 멀어지게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대선의 풍향계인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소위 ‘스윙 스테이트’에서 2016년에도 이겼고 내년에도 이길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보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재선에도 유리하다. 이를 감안할 때 그의 재선 확정 전 미국이 중국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며 쉽게 타협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설사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대(對)중국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의장 등 민주당 지도부도 중국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의 당선 직후인 2020년 12월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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