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에도 예의가 있다. 거짓말이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하는 것이어서 거짓말하는 사람도 사실의 엄중함을 존중한다. 그래서 사실을 감추려고 기를 쓰고, 사실이 드러나면 당황하거나, 변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사실을 밝힌 쪽에다 대고 거꾸로 거짓말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사기꾼이 아니면.
조국 법무부 장관은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 말을 했다. 가장 간단한 조국 딸의 표창장 위조 건을 보자. 동양대 최성해 총장은 “(조국의 배우자) 정경심 교수가 전화해 (딸의 총장 표창장 발급을) 본인이 위임받은 것으로 해달라고 한 뒤 조국을 바꿔줬다”고 5일 언론 인터뷰에서 분명히 밝혔다.
●거짓말에 권력형 압박…은폐까지
다음날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은 ‘위임’이라는 핵심단어만 뽑아내 총장이 잘못 들은 것처럼 뒤집어 씌웠다. 자기 아내는 총장에게 “위임해주신 것이 아니냐”고 했다는 거다. 전에 표창장 발행 권한을 위임해주고도 왜 딴소리를 하느냐는 뜻이다.
거짓말도 이쯤 되면 사람 잡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최 총장은 조국과의 두 번째 통화를 하며 위임했다는 보도 자료를 내라는 압박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조국은 딱 한번 통화했다고 했다. 조국의 배우자가 표창장을 위조하는 데 그쳤다면, 조국은 권력형 압력을 가하고 사실 은폐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 조국을 문재인 대통령은 9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다. 청문회 전까진 조국이 직접 위법행위에 관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청문회 직전 조국이 최 총장에게 권력형 위협을 가하고 은폐 조작을 종용한 것이 위법행위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큰 정의’를 위해선 거짓말도 불사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지난주까지 만끽한 조국을 코앞에 세워둔 채 “정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반칙,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대통령을 보며 나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조국 식으로 거짓말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DNA냐.
‘큰 정의’를 위해 작은 거짓말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이 386운동권의 정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조국도 몸담았던, 유토피아를 꿈꾼 20세기의 모든 진보적 변혁운동에는 독특한 집단 심성이 있다”며 “큰 정의를 위해선 작은 정의는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다는 정서가 그것”이라고 했다. 독재의 엄혹한 정치적 탄압 아래 민주화운동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선 큰 목표에 집중하며 때로 거짓말도 불사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랬던 행태가 ‘조국 사태’로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무엇이 큰 정의이고 무엇이 작은 정의인지를 누가, 누구 마음대로 정한단 말인가. 과거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가 사회주의 모국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했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부르며 주사파가 되고, 사회주의를 공부했던 좌파 역시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자신들의 목적만이 큰 정의이고 그것을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면, 대체 무엇이 큰 정의란 말인가. 주류세력 교체와 영구집권? 한반도의 평화번영? 아니면 북한 김정은의 핵과 동거하는 낮은 단계의 남북연방? ●“조국은 거짓말” 외쳤던 김태우
“나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다. 모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조국은 청문회에서 밝혔다. 사회주의자라는 커밍아웃을 듣고 보니, 작년 12월 31일 조국이 민정수석으로 국회에 출석해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말했던 것도 못 믿겠다.
민정수석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고 환경부 블랙리스트가 나왔다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소속 김태우의 폭로가 나오자 조국은 “제가 정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즉시 저는 파면돼야 한다”고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지난번 청문회 때와 똑같이 아주 침착하고도 정중한 모습으로. “모두 거짓말”이라고 외쳤던 김태우는 얼마나 기막혔을까.
문 대통령이 입이 닳도록 북한 김정은의 핵 포기 의사를 대변했던 것도 거짓말인지, 더럭 겁이 난다. 4월 15일에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안팎으로 거듭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시정연설문을 암만 뒤져봐도 그런 소리는 없는데도, 외려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가 아니라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협박을 했는데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태연하게 딴소리를 했다.
●안보와 경제, 또 무엇을 속이고 있나
한일갈등 해결은커녕 이를 빌미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내리고도 청와대는 미국이 이해했다고 밝힌 바 있다. 거짓말을 치명적 도덕성 문제로 보는 미국에서,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가 ‘문 정부의 거짓말’이라고 단언한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한미동맹에 무슨 일이 생겨도 국민은 감쪽같이 속을 판이다.
경제가 나아진다, 나아진다며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을 밀고 가는 것도 거짓말로 봐야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7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성과를 발표하며 “2022년까지 문재인 케어를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하자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거짓말”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민주주의는 사실에 근거해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는 유권자의 의지와 능력에 좌우 된다고 했다. 소련처럼 거짓말로 지탱했던 사회주의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북한도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같은 당에서도 조국의 문제를 지적하면 배신자가 되는 풍토는 당신들이 공격했던 파쇼 정부와 다를 바 없다. 조국의 사소한 거짓말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는, 그러면서도 김정은의 약속은 철썩 같이 믿는(척하는) 괴물 정부는 과연 언제까지 국민을 속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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