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무언가 할 수 있다면 굉장할 것이지만 할 수 없더라도 괜찮다(that‘s fin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고 싶다”며 “우리는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북한이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방안을 가져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까지 제재가 완화된 것은 없고, 계속 강화돼 왔을 뿐”이라며 먼저 대북 제재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합의를 볼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며 네 차례나 “무슨 일이 이어날지 지켜보자(we will see)”고 말했다. “we will see”는 트럼프가 비핵화 등 핵심 이슈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을 때 사용하는 특유의 표현이다.
앞서 트럼프는 한미정상회담 직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 “그것은 곧 일어날 수 있다(it could happen soon)”이라며 사뭇 다른 톤으로 말했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잇단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기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을 가로채며 “그에 대해 들여다보고 논의할 것”이라고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비핵화와 관련해 밝힌 ‘새로운 방법(new method)’과 관련해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말한 뒤 “제재는 유지돼야 된다는 언급은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선 북한이 요구해온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한때 “워싱턴이 미국식 단계적 비핵화로 평양을 설득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낳았던 ‘새로운 방법’에 대한 언급을 일절 피하며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서두르지 않겠다”고 한 것은 북한에 실질적이면서도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미 정상회담은 이미 두 차례 했다. 뭔가 실질적인 성과(substance)가 나와야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는 게 워싱턴 조야의 대체적인 생각”이라고 했다. 협상에 정통한 또 다른 소식통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만 잘 구슬리면 제재 완화를 얻어낼 수 있다고 착각할 경우 ’제2의 하노이 회담‘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며 “트럼프 협상팀이 대북제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그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북한에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프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제재완화 대신 종전선언 등 체제안전보장 카드를 중심으로 비핵화 테이블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북한과 전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솔직히 김정은은 그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계사적 대전환, 업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종전선언을 중심으로 북-미가 새로운 비핵화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 후 종전선언을 핵심 카드로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뉴욕=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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