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4일 해명이 ‘하명(下命) 수사 첩보’ 출처를 찾는 (검찰의) 수고를 덜어줬다.”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김기현 전 울산시장에 대한 경찰 수사를 촉발시킨 청와대 첩보보고서의 제보자가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이라는 사실이 4일 밝혀지자 검찰 안팎에서는 이런 평가가 나왔다. 2017년 11월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 근무하던 문모 행정관(52)이 송 부시장에게 첩보를 받아 ‘지방자치단체장 김기현 비위 의혹’ 보고서를 작성한 과정까지 공개되면서 검찰 수사가 숨통이 트이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소속으로 울산을 방문했던 검찰수사관 A 씨가 숨지고, A 씨의 휴대전화마저 암호에 막혀 난관에 부딪혔던 수사는 청와대의 해명으로 한 고비를 넘겼다.
검찰은 여당 후보였던 송철호 울산시장 측근인 송 부시장이 제보한 ‘원첩보’가 경찰 수사로 이어지기까지 재가공되고 편집된 과정과 여기에 가담한 청와대 관계자가 더 있었는지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 檢, 청와대 해명 하루 만에 문 전 행정관 조사
5일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검사 김태은)는 문 전 행정관을 상대로 송 부시장으로부터 정보를 수집한 경위와 받은 제보 내용을 재가공한 경위 등을 조사했다. 문 전 행정관은 검찰에서 “송 부시장에게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넘겨받은 김 전 시장과 관련한 제보를 요약 정리했을 뿐 다른 의도가 없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직무 범위 외의 지자체장 관련 첩보를 수집해 보고서로 만들었다면 그 자체로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민정비서관실이 친인척 관리와 민심 파악 등 본연의 업무 외에 청와대 직제상 수집 권한이 없는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첩보를 수집하고, 내용을 일정 부분 가공한 자체가 ‘위법’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보를 수집했거나 제보자의 정치적 의도를 알면서도 마치 익명의 투서처럼 경찰에 내려보냈다면 하명 수사를 넘어 불법 선거 개입으로 파장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앞두고 경쟁 후보의 비위 첩보가 청와대를 거쳐 경찰 수사까지 이어졌다면 ‘선거 공작’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송 부시장에서 문 전 행정관으로 이어지는 첩보 전달 과정에서 관여자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 ○ 문 전 행정관 고급 첩보 생산으로 표창도 받아
검찰은 특별수사와 범죄 정보 수집을 한 베테랑 검찰수사관이었던 문 전 행정관이 제보자의 전언을 단순 편집해서 보고서를 작성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문 전 행정관은 2011년 청와대 직원으로 전직하기 전까지 검찰에서 고급 범죄첩보 수집 능력을 인정받아 모범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해당 보고서의 문장과 표현 방식, 울산 현지 사정이 소상히 기재된 점에 비춰 송 부시장의 제보 내용을 문 전 행정관이 스크린했거나 적잖은 정보가 추가됐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송 부시장은 5일 기자회견에서 “김 전 시장 측근 비리에 대한 얘기가 언론과 시중에 떠돈다는, 일반화된 내용을 중심으로 대화한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 말이 사실이라면 문 전 행정관이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상당량의 정보를 덧붙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송 부시장이 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 전 행정관이 지역 동향을 먼저 물어 답했다”고 한 점도 검찰은 문 전 행정관이 제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한 정황으로 보고 있다.
○ 靑 “하명 수사는 아니다… 제보자 신원 밝히는 게 불법”
전날 해명으로 논란이 증폭되자 청와대는 A 씨의 울산 방문이 김 전 시장 첩보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하명 수사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다시 강조했다.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은 5일 청와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보자 신원을 밝히지 않은 것에 대해 “본인 동의 없이 누구인지 밝혔다면 불법이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광철 민정비서관이 A 씨에게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검찰 수사 정보를 집요하게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윤 수석은 “근거 없는 주장을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한 언론의 횡포”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이 비서관도 별도의 입장문을 내고 “단연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고인의 비극적 사태를 이용해 허위사실을 저와 연결시키려는 시도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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