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 믿고 은행 갔더니…분통 터지는 소상공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2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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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표는 잘 모르겠고요, 어쨌든 대출 연장 안 됩니다.”

무역마케팅 전문기업을 운영하는 A 씨는 7일 은행을 찾았다가 빈손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2월 이후 매출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A 씨는 ‘6개월 이상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라는 정부 발표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은행 창구에서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은행 직원은 “공문이 아직 안 내려와서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사정사정 했더니 해당 직원은 관련 내용을 살펴본 뒤 이번에는 “6개월이 아닌 2개월만 가능하다”고 했다. ‘6개월 이상 유예’는 신용도가 좋은 기업에만 해당된다는 설명이었다. 정부 발표엔 그런 말이 없었다. 그나마 2개월 뒤에는 유예된 원리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한다고 했다. 은행 직원도 민망했는지 “신청하는 기업이 별로 없다”고 말을 흐렸다.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을 위한 금융지원 방안이 쏟아지고 있지만 현장에선 문턱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원방안을 발표한 지 한참 지나도 정작 금융회사 직원들이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지원방안을 적용하는 각론도 금융회사마다 제각각이어서 정부 발표만 믿고 신청했다가 낭패만 보는 경우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 1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를 발표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엔 원리금 연체나 자본잠식, 폐업 등의 부실이 없다면 4월 1일부터 최소 6개월 이상 연장 및 유예를 받을 수 있다는 전 금융권 공통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하지만 실제 대출창구에선 A 씨처럼 유예 가능기간이 대폭 줄어드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기간 단축을 원할 경우 조정가능하다’는 조건을 은행 측이 아전인수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적용범위를 둘러싼 혼란도 있다. ‘금융회사가 외부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취급한 정책자금 대출은 자금지원기관의 동의가 있어야 지원대상에 포함된다’는 단서 때문이다. 소상공인 정책자금을 이용했던 자영업자 김모 씨(38)는 “은행을 찾았다가 ‘만기연장을 원하면 먼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가서 승인부터 받으라’는 답변만 얻었다”고 했다.

1일부터 시행된 시중은행의 소상공인에 대한 초저금리 대출도 신용등급 평가기준을 놓고 진통을 겪었다. 신용평가사에서 받은 신용등급이 1~3등급이라고 하더라도 은행들의 자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대출이 안 되는 사례가 속출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은행에 공문을 보내 1~3등급에는 은행 자체 신용평가와 상관없이 대출을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금융회사들도 할 말은 있다. 정부 대책이 쏟아지다보니 내용을 따라가기 벅차다는 것이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구체적 지침이 늦게 내려오다 보니 ‘기다려봐야 한다’는 식의 대응을 할 수 밖에 없다”라며 “‘선(先) 발표 후(後) 지침’ 식”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8일 정부가 발표한 ‘취약 개인채무자 재기지원 강화 방안’을 두고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연체위기의 개인채무자에게 원금상환을 최대 1년간 유예해주는 내용인데, 시행 시기는 4월 말로 잡혀있지만 구체적인 소득증빙 방법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 발표만 믿고 금융기관 창구를 찾았다가 좌절을 겪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당국이 소비자 친화적인 관점에서 좀더 정책의 디테일까지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소상공인들의 애로사항을 살피며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계속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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