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박근혜 감성팔이 그만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5일 03시 00분


朴 병풍 기댄 친박, 자기반성 있어야… 향수 자극하는 메시지는 미래 없어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박근혜는 대통령을 그만둬도 살아 있는 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 시절 한 중진 의원은 이같이 잘라 말했다. 특히 박근혜의 아성인 대구경북에선 박근혜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평생 당선보증수표로 통한다고 했을 정도였다. 2008년 특정인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라는 신당이 만들어지고, 2016년 총선 때 ‘진박 감별사’라는 해괴한 공천 작업이 벌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박근혜 브랜드는 3김(金), 친노와 함께 팬덤 정치가 가능했다.

친박연대도 그랬지만,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마케팅은 위력적이었다. 선거 두 달 전 세월호 참사의 후폭풍이 거세지자 당시 여권 강세 지역에서도 ‘빨간불’이 켜졌을 때다. 전략팀은 승부수로 ‘박근혜를 살려 달라’ 캠페인을 제시했다. 막판 지지층 결집으로 판을 뒤집어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믿었던 친박 핵심 후보들은 이 캠페인을 거부했다. 박근혜 마케팅의 역풍을 우려한 것이다. 여권 수뇌부에서 “계속 거부하면 대통령과의 연(緣)을 끊겠다”고 압박해 캠페인이 시작됐고, 그 결과 주요 격전지에서 1∼2% 박빙의 승리를 했다.

그동안 친박 인사들의 정치적 자산은 상당 부분 박근혜 ‘아우라’가 기반이었다. 물론 개인적 능력도 없지 않았겠지만 정치적 홀로서기보다는 박근혜 병풍에 많이 기댔다. 그러다 보니 정권 주도 세력으로서 정치적 대응은 상당히 미숙했다. 2016년 촉발된 탄핵 정국에서 그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탄핵 과정에서 정치적 반대파를 비난할 순 있어도 비난으로 일관할 순 없다.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권 주도 세력이 져야 하는 것이다.

한 친박 원로는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비서진 개편 등으로 분위기 쇄신을 통한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는데 일부 수석이 반대하니까 바로 없던 일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친박 핵심 의원들의 회동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꼬인 정국을 타개할 만한 치열한 노력은 부족했다. 한 친박 핵심 중진은 사석에서 “우리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파면 결정이 나오니 당황했다”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와 친박 핵심들이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옥중에 있는 박근혜는 지난해 문고리 3인방의 특별활동비 관련 공소장 진술 내용을 읽으면서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일부 진술서 내용에 밑줄을 그으면서 여러 차례 “이건 아닌데”라고 되뇌었다는 후문이다. 주변에선 최측근 3인방의 변심에 더 속이 탔을 거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박근혜가 변호인을 제외하고는 외부인을 거의 만나지 않는 것도 이런 복잡한 심경 때문일 것이다.

총선이 다가오니 다시 박근혜의 선택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친박 인사들을 중심으로 박근혜가 친박신당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추석 전에 내놓을 것이며, 친박신당에 의원 40∼50명이 합류할 것이라는 둥 각종 버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박근혜 메시지만 나오면 보수 세력의 판도가 뒤집힐 것이라는 희망적 낙관주의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일부 친박 인사들의 자기반성은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 메시지에 기댄 이들의 발상은 시대착오에 가깝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있는 느낌이 든다. 그마저도 “박근혜가 우리를 후원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정치적 행위야 자유이지만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분노와 지난날 박근혜 향수에 기댄 감성팔이만으로 등 돌린 국민의 마음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박근혜#자유한국당#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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