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한 자식을 살려주시오” 백년전에 보낸 한글편지 주인 알고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9일 15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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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도 더 전에 쓰인 한글 편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글씨들이 편지를 쓴 사람의 불안정한 심리를 말해준다. ‘어머님께 올리나이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처음에는 큰 글씨이더니, 그걸로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작은 글씨로 변한다. 위쪽 여백은 아예 더 작은 글씨들로 빼곡하다. 어머니에 대한 안부와 긴급한 용건을 종이 한 장에 담으려다 보니 그리 되었다.

정읍에 있는 동학농민기념관이 최근에 공개한 편지다. 전라남도 나주 일대에서 활약하던 농민군 지도자 한달문(韓達文)이 관군에 체포돼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보낸 것이다. 얼마간의 돈이 있으면 살 길이 있다고 어머니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300여 냥이면 어진 사람 만나 살 묘책이 있어 급히 사람을 보내니 어머님, 불효한 자식을 급히 살려주시오.’

그의 집에서는 돈을 마련해 나주옥에 가서 그를 업고 돌아왔다. 편지를 보낸 것이 1894년 12월 28일이었는데 어째서 이듬해 3월 30일에야 집에 돌아왔는지 그 내막을 알 길은 없다. 여하튼 그는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틀 후인 4월 1일 세상을 떠났다. 장독(杖毒), 즉 매질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넉넉했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조차 없었다. 동학 접주(接主)였다는 것은 일본군에 휘둘리는 조선왕조의 눈엔 국가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에 대한 기억은 직계가족들에게조차 잊히고 묻혀야 했다. 나라가 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그의 큰아들이 남긴 책 밑에서 편지가 나왔다. 누가 볼 새라 꽁꽁 숨겨두었던 125년 전의 편지는 농민군 지도자의 최후와 그의 가족이 받았을 고통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달문과 그의 가족 같은 사람들이 역사에 얼마나 많았을까. 누르스름한 편지는 개인의 것이기를 넘어 그러한 사람들이 살아야 했을 고단한 삶과 민족의 비애를 고통스럽게 환기하고 증언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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