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박항서 감독이 동남아시아(SEA)경기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순간, 어쩔 수 없이 거스 히딩크 감독의 얼굴이 떠올랐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이끈 명장이었고, 박항서 당시 대표팀 수석코치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스승이다. 하지만 그는 올 9월 박 감독의 베트남에 패한 뒤 중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경질됐다. 취임 1년 만이었다. 무엇이 박 감독과 히딩크의 운명을 갈라놨을까.
베트남은 지금은 무시무시한 팀이 됐지만, 2년 전 박 감독 취임 때만 해도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훈련이 끝나고 나면 코치는 물론 감독까지 나서서 장비를 치우는데, 선수들은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 식사 시간에 선수들은 서로 말 한마디 없이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벤치에서 대기 중인 후보 선수들은 경기는 보지 않고, 딴짓만 했다. 그러니 동남아시아에서도 늘 변방 자리였다.
베트남 축구의 성공 전략을 최근 책으로 펴낸 장원재 교수(전 축구협회 기술위원)는 박 감독이 베트남의 이런 ‘개인주의’를 타파한 것을 중요 요인으로 봤다. 박 감독은 단합을 위해 식사 자리에 휴대전화를 들고 오지 못하게 하고 서로 대화하게 했다. 어기면 벌금을 물렸다. 같은 기량을 지닌 선수라면 팀에 잘 녹아드는 선수를 뽑았다. 본인도 존중하는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샀다. 팀워크가 좋아지고, 전술 능력이 개선됐다. 그렇게 승리를 맛보기 시작하더니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실제 현대 축구는 전술적으로 복잡해지고 공간도 넓게 쓰게 되면서, 선수들 간 원활한 소통과 협업이 승패를 가르고 있다. 베트남의 승리도 이런 맥락이다. 손흥민 같은 유럽 빅리그 선수들도 쉴 새 없이 동료들에게 ‘엄지 척’을 하는 건, 혼자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 축구가 헤매고 있는 것이다. 알리바바 창업주인 마윈(馬雲)이 최근 공개 석상에서 “중국 축구는 엉망이다. 선수들은 도무지 ‘협력’을 할 줄 모른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선수들은 혼자 축구하고, 네 탓만 한다. 지난달 월드컵 예선전(시리아전) 패배 직후 공격수 우레이(武磊·스페인 에스파뇰)가 “엉성한 수비 때문에 졌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성인 대표 선수들이 이 정도이니, 그 후배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히딩크도 이런 중국 축구를 변화시키지 못했다. 중국 축구계는 히딩크를 지도자가 아니라 기술자로 취급했다. 그가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기적인 성적만 요구했다. 2002년 당시 우리가 히딩크의 시행착오를 1년 6개월이나 인내한 것과 달랐다. 중국은 아직도 ‘축구는 문화가 아니라 기술’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성인 대표팀 마르첼로 리피 감독마저 떠났다.
남의 나라 축구 팀 얘기로 한정할 건 아니다. 우리나라도 상당수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의 개인주의로 고민이 크다. 축구만큼이나 세상도 복잡해져 협업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별로 없다. 개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따라 베트남 축구가 되고, 중국 축구가 된다.
베트남 축구 사례를 볼 때 개인주의가 어떤 것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잘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과거 베트남 선수들의 개인주의 행동을 일종의 방어기제로 분석한다.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에 진 것이라고 심리적 보호막을 쳤다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패배의 원인이 아니라, 패배로 인한 ‘무기력’의 결과라는 얘기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개인주의를 우선 매도할 게 아니라, 우리 안의 모습부터 들여다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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