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에서 법령으로 설치돼 장관급 위원장을 가진 위원회는 5곳. 이 중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3곳의 수장이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뉴스의 중심에 세 명이 차례차례 소환됐다. 아무래도 여성 리더십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실력으로 승부하기를, 위기에 맞서 ‘우리가 남이가’ 같은 관행과 타협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길 기대하면서.
박은정 국민권익위원장은 석 달 전 이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박 위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가 검찰 수사를 받는 것과 관련해 “이해 충돌로 볼 수 있으며 직무 배제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법대로 유권해석을 내린 권익위만이 상식의 힘을 보여주며 국민을 위로했다고 썼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타다 금지법’을 두고 정부 내에서 유일하게 소비자 편에 섰다. 렌터카의 운전자 알선을 막아 타다를 콕 집어 금지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경쟁 촉진 및 소비자 후생 측면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당정청의 전방위 압박에 “경쟁 당국의 의견일 뿐 법안 반대가 아니다”라며 바로 물러서긴 했다. 설령 빈말일지라도 택시업계의 위력에 밀린 소비자의 편익을 상기시킨 것은 공정위뿐이었다.
두 위원장의 발언은 학자로서의 소신, 삶의 궤적과 일치했다고 본다. 가장 최근에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소환됐다. 청와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를 조사해달라’는 국민청원을 두 차례 공문으로 보내면서 뒤늦게 인권위가 조국 사태에 휘말렸다.
당초 인권위는 청와대의 공문을 받자마자 바로 반송했다. 인권위법은 익명·가명으로 제출된 진정은 각하하도록 되어 있는데 국민청원이 이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진정 요건을 문제 삼아 반송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사실상 완곡한 거절이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9일 다시 국민청원을 이첩하면서 파장이 커졌다. 청와대가 직접 이를 공개하자 ‘내 편’이라 여겼을 인권단체가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 반발했다.
청와대는 “착오로 송부돼 폐기 요청을 했다”고 수습했으나 인권위의 독립성은 이미 훼손됐다. 약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인권위 진정이 검찰 압박 수단으로 변질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최 위원장은 줄곧 침묵을 지켰다. 뜻밖이었다. 그는 평생 차별과 싸운 인권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이다. 1991년 한국성폭력상담소를 설립하고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김진관 사건 등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했다. 진보진영이 외면한 탈북자 인권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정무적인 판단이 개입된 의도적인 침묵은 그가 그려온 삶의 궤적과는 거리가 있다.
조국 진정은 제3자를 통해 결국 접수됐다. 최 위원장의 인권위는 이번 진정을 각하 또는 기각해야 한다. 대다수 국민은 조 전 장관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이고, 그와 가족이 받게 될 수사의 공보준칙을 바꾼 사람이다. 최 위원장은 2018년 9월 취임 당시 “인권위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우리 스스로 그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했다. 스스로 증명해야 할 때가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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