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은 상당 기간 백신도 약도 없어 치명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에이즈바이러스는 혈액과 체액으로만 옮겨져 스스로 조심하면 예방이 가능하다. 그런데 바이러스 가운데는 공기 중에 떠돌다 아무나 감염시키는 가공할 전파력을 지닌 것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병원 감염’의 주범인 EB바이러스다. 다행히 이 바이러스는 감염되어도 증상 없이 지나가거나 가벼운 편도선염 등을 유발하는 정도다.
▷이처럼 병원체의 전파력과 질병의 심각성(숙주의 치사율)은 통상 반비례한다. 이는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 자신도 살 수 없는 생존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어떤 바이러스가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면 이는 일반적인 병원체 생리를 거스르는 것이며 인류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 보건전문가는 그제 관영TV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이 빠르게 공기 감염이 되는 인플루엔자와 비슷하다고 발표했다. 그는 “밀폐된 공간에서 감염자가 남긴 비말(飛沫)이나 에어로졸(미세 자나 물방울)을 통해 전염이 이뤄졌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한 달여 만에 확진자가 1만여 명에 이르고 감염원이 불분명한 ‘미스터리 환자’가 속출하는 데 대한 분석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1967년 처음 발견된 뒤 사스, 메르스 등 우한 폐렴에 앞서 6가지 변종이 나왔지만 공기 감염 사례는 없었다. 공기 감염 병원체로 확인된 바이러스는 홍역이나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그리고 감기의 원인인 아데노바이러스 등이 있다. 세균 가운데도 결핵이나 디프테리아 등은 공기 감염이 가능하다. 공기 감염이 무서운 것은 매년 독감 사망자가 숱하게 발생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2019∼2020년 독감 시즌에 미 전역에서 1500만 명이 인플루엔자에 감염되고 820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인간의 건강을 위협해 온 장티푸스, 콜레라, 일본뇌염 등 많은 전염병은 물, 음식, 동물, 곤충 등 전파 경로가 확인됐으며 백신이나 약이 개발돼 인류가 통제하고 있다. 우한 폐렴은 ‘무증상 전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만약 공기 감염마저 가능하다면 방역 전쟁의 난도가 몇 곱절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학계는 우한 폐렴의 공기 감염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바이러스는 숙주가 없으면 오래 남아 있지 못한다. 감염자가 며칠 전에 다녀간 곳의 공기 중에 바이러스가 살아남아 떠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방역은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하지만 아직은 공기 감염 공포에 떨 단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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