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숲에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작품은 사실 인생의 선택지에 관한 시다. 사람은 누구나 앞에 놓인 두 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고, 가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해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한숨을 쉬며 후회할지 모른다고 노래했다. 하지만 제목 때문인지 종종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다짐의 의미나 ‘전대미문의 사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로 인용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한국 경제는 정말 역사상 한 번도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서고 있다. 국민의 일상이 마비됐으니 경제계가 멀쩡할 수 없다.
처음엔 자동차업계가 마비됐다. 전선 다발을 만드는 부품공장들이 중국의 춘제가 길어지면서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한국의 자동차 공장들이 줄줄이 섰다. 이 제품은 엄청난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아 기업들이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갔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조차 멈춰 세운 바이러스의 파괴력에 대해 길게 놀랄 틈도 없었다. GS홈쇼핑 직원이 확진자 판정을 받으면서 홈쇼핑 방송이 사상 처음으로 3일간 재방송으로만 진행된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유통업체들은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다녀갔으면 일단 매장을 폐쇄하고 있는데 주말 사이 확진자가 무서운 기세로 늘고 있어 대체 어디까지 매장이 폐쇄될지 짐작조차 못할 지경이다. SK하이닉스는 한 신입 교육생이 확진자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교육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대규모로 자가 격리했다. 주말 사이 스마트폰을 만드는 삼성전자 구미공장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폐쇄됐다.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곳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용광로를 가동하는 제철기업들은 자동차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기고 감염 우려에 소비자들이 소비를 줄이면서 재고가 쌓이는 곳이 많지만 용광로 가동 중단은 생각도 못한다. 한 번 세우면 쇳물이 굳어 이를 재가동하는 데 무려 4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한 번 중단하면 재가동에 1개월 반이 걸리는 석유화학업계도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여행은커녕 집 밖으로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수요가 급감하자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철강 제품은 그나마 안전성이라도 높지 석유화학 제품은 보관하다가 자칫 누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항공업계, 여행업계, 호텔업계는 직원들 월급 반납에 강제 무급휴가를 동원하고 있다. 영세한 기업들이 파산하는 일도 이미 일어나고 있다. 2년간 최저임금 급상승에 주52시간제를 겪은 자영업자들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쳤다. 지난해가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올해 초반에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끼던 기업들이 지금은 숨만 죽이고 있다. 국제유가가 급락하고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올해 한국 경제에 대해 마이너스 성장까지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다. 감염 확산세가 언제쯤 진정될지, 국민들이 언제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할지 말이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늘 손을 잡고 다니는 친구다. 외환위기 때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우리는 기회를 찾아냈다.
모든 게 불분명하지만 단 하나 명백한 건 가지 않은 길은 곧 이미 간 길이 된다는 점이다. 이미 간 길의 좋은 점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곳이 지식의 영역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이번의 경험이 우리 사회의 위기대처 능력을 키우기만 한다면 그 또한 최악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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