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에서 승리한 국회의원 당선자 300명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은 청년들이 있다. 30, 40대의 패기를 앞세웠지만 정치 신인의 한계와 험지 출마라는 불리한 환경은 청년 정치에 도전한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 총선에서 쓰라린 패배의 경험을 얻었지만 아픔은 잠시. 주변의 걱정에도 이들이 부러움을 살 만한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돼 준 소명의식은 패배의 아픔에도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다. 4년 뒤 패자부활을 노리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고 외치는 여야 젊은 정치인 4명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 서재헌 “대구시민 응원 힘입어 독점적 정치 깨고싶어”
“경험 없고 능력 없는 것이 청년이다. 앞으로도 도전하고 또 도전하겠다.”
4·15총선에서 대구 동갑에 출마했다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서재헌 후보(41)는 거침이 없었다. 15년간 금융권에서 근무하다가 2017년 정치에 입문한 서 후보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에서 2018년 지방선거와 올해 총선까지 두 차례 출마해 모두 낙선했다. 출마 소회에 대해 그는 “지역주의 타파 등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며 “정치인이 치열하게 경쟁하면 주민들의 삶은 나아진다는 확신이 있다. 미래통합당과의 경쟁 구도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서 후보는 정치 입문 3년 차다. ‘금융맨’으로 근무하던 그는 경제성장률이 1%대에 머무는 저성장 시대에는 정치를 통해 정책을 바꿔야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정치권의 문을 두드렸다. 영국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그는 귀국 후 말 그대로 무작정 정치권 입문을 시도했다. 서 후보는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무작정 민주당 대구시당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서 후보는 2만1594표(26.62%)를 얻었다. 미래통합당 류성걸 당선자(5만6444표·69.59%)와는 42.97%포인트 차이였다. 서 후보는 “대구 시민들이 표는 안 주셨지만 마음은 주셨다. 어르신들이 ‘젊은 친구가 열심히 하는 것이 참 좋아 보인다’고 격려해줄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았다”고 말했다.
서 후보는 민주당 후보로서 ‘험지 중의 험지’ 대구에 도전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대구경북 주민들은 수십 년간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가 경쟁 없는 일당 독점적 정치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쟁력 있는 정치인들이 많이 배출돼 서로 경쟁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협치하는 것이 대구 발전의 기본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의 롤모델은 이번 총선에서 낙선한 김부겸 의원이다. 주변에선 그를 ‘리틀 김부겸’이라고도 부른다. 서 후보는 “당의 ‘험지’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주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청년 정치의 어려움에 대해선 ‘주목도’를 꼽았다. 그는 “‘험지’ 출마자에겐 기회가 많다. 그래도 조직도 없고, 인지도도 낮아 정치하기 쉽지 않은 환경인 것은 변함이 없다”며 “인지도를 높일 기회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최지은 “보수 텃밭 부산에서 변화의 가능성 봤다”
더불어민주당, 청년 그리고 여성. 어느 하나 유리할 것 없는 스펙이었다. 부산 북-강서을에서 21대 총선 출사표를 낸 민주당 최지은 후보(40) 이야기다. 15대 총선에서 신설된 지역구인 북-강서을은 지금까지 줄곧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곳이다. 상대는 탄탄한 지역 조직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조국 사태’를 거치며 대중적 인지도까지 쌓은 미래통합당 재선 의원 김도읍 후보였다. 결과는 52% 대 43%. 9%포인트 차 패배였다.
최 후보는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한국에 온 건데 너무 아쉽다”며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낸 건 큰 수확”이라고 했다. 최 후보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스펙의 소유자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강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각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땄다. 민주당에 영입되기 전까지 세계은행에서 선임이코노미스트로 일하며 세계 약 100개국을 누볐다.
‘경제통’인 그가 ‘험지 중의 험지’인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한 건 지역 경제 상황 때문이다. 최 후보는 “부산이 전국에서 고령화율과 함께 실업률이 가장 높다”며 “특히 북-강서을은 도농 지역이 많아 체감 경기가 더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최 후보는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는 현실이 아쉬웠고, 바꿔보고 싶었다”고 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유세를 다닐 때마다 “쟈 누고(쟤 누구냐)?” 하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하지만 점차 변화가 느껴졌다. 최 후보는 “첫 투표권을 갖게 된 여고생들이 ‘생애 첫 투표는 언니를 뽑을 거예요’ 하며 손을 잡아주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길에서 만난 유권자들로부터 손편지나 네잎클로버, 직접 만든 마스크를 선물받기도 했다. 3월 초 만든 유튜브 채널 ‘최지은TV’ 구독자는 2만5000명을 넘겼다. 최 후보는 “변화를 향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최 후보는 “코로나19로 대면 선거 운동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고령 유권자에게 충분히 인지도를 쌓지 못한 것이 패배의 원인 같다”고 했다.
아직 향후 행보는 정하지 못했다. 최 후보는 “아직 구체적 계획은 없다”면서도 “정치인이라면 어떤 정치인이 될지, 부산을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 천하람 “대구출신 호남 출마… 삼세번 도전해야죠”
득표율 3%. 표로 환산하면 4058표. 전남 순천에서 ‘대구 청년’ 미래통합당 천하람 후보(34)가 받아든 첫 성적표다. 최소 득표율(10%)을 받지 못해 선거 비용은 사비로 충당하게 됐지만 민생당, 정의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기록했다. 재선 의원 출신인 민중당 김선동 후보와의 격차는 1800여 표에 불과했다. 그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 호남에서도 인정받는 보수 정치를 하자는 게 목표였다”며 “많은 주민들이 ‘다음에 나오면 꼭 찍어주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김앤장법률사무소에 다녔던 그는 늘 주류 사회에 속했다. 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에 출사표를 낸 이후 그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닌 소수, 비주류가 됐다. 천 후보는 “주민들이 ‘고향 어디냐’고 물었을 때 대구라고 하자 ‘정신 나간 사람인가’ ‘우리 지역을 무시한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했다.
‘어차피 안 될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그는 총선 레이스를 ‘완주’했다. 초반엔 냉대를 받았지만 후보자 토론회 이후 ‘바닥 민심’이 달라졌다고 했다. 현 정부를 무조건 비난하고 반대하기보다는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평가에서 소득주도성장, 주 52시간 근로 제도,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 정책은 반대하지만 코로나19 사태 때 검사, 방역 잘되는 건 칭찬할 부분이라고 했다. 합리적인 주장에 대해 주민들이 좋게 보신 것 같다”고 했다. 토론회 이후 주민들은 ‘찍어주긴 어렵지만 응원하고 싶다’ ‘당은 저쪽이지만 생각 자체는 건전하다’고 했다. 그는 “유세 때 시장을 한 바퀴 돌 때마다 상인들이 입에 넣어주는 음식으로 배가 불렀다. 체중이 2∼3kg 늘어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거는 끝났지만 그는 순천에 남았다. 캠프로 사용하던 사무실은 ‘천하람 변호사 사무실’이 됐다. 다음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번에는 꼭 당선되는 것이 목표고 삼세번 도전도 마다하지 않겠다”라며 “가까운 목표가 있다면 2022년 지방선거 때 보수 정당 시의원을 당선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왕 시작한 정치, 대선주자급의 ‘큰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그는 “호남을 떠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힘주어 말했다. “보수 정치인이 호남을 품고 호남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어야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순천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 김재섭 “이제 정치입문 3개월… 세대교체 꿈 이룰 것”
정치 입문 3개월 차, 33세의 청년 정치인이 도전장을 내민 곳은 서울 도봉갑이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인 고 김근태 전 의원이 3선, 그의 부인인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재선 현역인 지역이었다. ‘도봉 토박이’이기도 한 미래통합당 김재섭 후보는 “산업화, 민주화 시대의 정치인은 수명을 다했고 21세기 시대에 걸맞은 차세대 정치인이 되겠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정치의 세대교체를 꿈꾼 통합당의 최연소 청년 후보였다.
서울대 법대를 우등 졸업한 김 후보는 법조인의 길을 걷지 않았다. “부모님께 내쫓길 각오를 했다”던 그는 실물 경제와 신산업에 관심이 많았고 정보기술(IT) 계열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사진과 영상 등 디지털 정보를 상속하는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던 중 “정치를 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겹겹이 쌓인 규제에 직면하면서부터다. 그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동기들과 함께 지난해 12월 청년정당을 표방한 ‘같이오름’ 창당에 나섰다. “불필요한 규제와 행정 만능주의를 이대로 두면 스타트업의 성장동력을 떨어뜨리겠구나 싶었고 미래세대로서 두려움이 생겨 정치에 뛰어들었습니다.”
30대 초반의 통합당 최연소 후보였던 그가 처음부터 험지에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면전에서 ‘너는 좋은데 당이 안 좋다’ ‘민주당 입당할 생각 없냐’ ‘좋아하는 당 아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시장, 가게 등 밑바닥을 훑었다는 그는 “초반만 해도 싸늘한 민심을 느꼈는데 진심을 다하니 나중엔 알아보는 분도 많았다”며 “정의당 지지한다는 주민이 ‘이번엔 너 뽑아주겠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번 총선에서 40.4%(3만7967표)의 득표율을 받았다. 통합당 후보가 서울 지역에서 받은 평균 득표율(43%)에 약간 못 미치지만 김 후보는 “그저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공천이 선거 45일 전에 확정됐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며 “이제 내겐 4년이라는 시간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남은 4년, 그는 교육봉사 활동에 뛰어들 예정이다. 교육 낙후지역에 속하는 도봉의 아이들이 학업 때문에 멀리 학교를 다니는 게 가장 마음이 아팠다던 그는 “지역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주민들과 공감대를 쌓아 다음번엔 꼭 선택을 받겠다”고 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 강성휘 기자 yolo@donga.com /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