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기상이변이 낳은 걸작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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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19세기 영국의 문학작품은 흐린 날씨의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바이런의 ‘어둠’ 등은 흐리고 비 오는 날씨가 계속되던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쓰인 것들이다. 이 시기의 소설풍인 고딕(Gothic) 소설에서는 폭풍우나 으스스한 날씨가 중요한 문학적 요소로 활용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격렬하고 다양한 날씨 현상과 격동이 가득한 소설이라고 비평가들이 평한다.

19세기에는 기상이변이 많았다. 1815년의 탐보라 화산 폭발처럼 그 원인이 자연에서 비롯된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산업혁명에 의한 매연이 초래한 것들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인해 날씨가 급격히 나빠졌다. 매연 배출을 금지하는 규제가 1853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할 정도로 1850년대가 되면 산업발전에 의한 오염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1851년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런던에서 개최되었다. 철골과 유리로 지어진 거대한 수정궁에서는 산업혁명의 눈부신 성과인 공산품이 전시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공해에 찌든 런던 시민의 고통이 있었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작가 찰스 디킨스는 ‘황폐한 집’이란 소설을 통해 산업혁명의 성과에 가려진 빈민굴의 숨 막히는 환경과 비참함을 고발했다. 런던 만국박람회의 테마가 ‘진보’였는데 이는 인간의 무한한 능력과 진보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의미했던 ‘진보’는 결국 자연에 대한 무자비한 파괴로 나타났다.

영국 하늘을 뒤덮었던 매연으로 인한 날씨 변화로 1870년대에는 여름마다 비정상적으로 비가 많이 내려 수확한 농산물이 썩어 나갔고 전염병도 돌았다. 현대 통계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대기 중 이산화황 농도는 1880년대에 정점에 달했다고 한다. 1884년 65세의 존 러스킨은 ‘19세기의 폭풍 구름’이란 책에서 청년 시절의 날씨에 비해 확연하게 나빠진 날씨를 비교하였다. “그때의 날씨는 석 달이나 태양을 못 볼 정도로 음산한 날씨는 아니었다”라고 한탄한 그는 대학생 시절인 1840년경에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서로 다른 날씨가 있을 따름”이라며 모든 날씨를 찬양했던 사람이다. 문학비평가인 그는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에서부터 당시의 바이런까지 예술작품과 문학작품을 꼼꼼히 비교 검토한 결과 당시와 같은 음산한 날씨가 예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러스킨은 결국 인간과 자연 간의 성스러운 계약이 비참한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남겼다.

런던 만국박람회 이후 17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는 여전히 기후변화의 위협과 미세먼지의 고통을 동시에 겪고 있다. 오염된 대기와 나쁜 날씨로 호러 소설이 이 시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가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러스킨의 불길한 예언이 단지 묵시문학적 교훈만을 남겨주는 것에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기상이변#기후변화#미세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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