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차례 위기를 겪은 강원 춘천시 중도 ‘레고랜드’ 건설 사업이 최근 시공사 변경으로 또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부터 사업 주체로 전면에 나선 영국 멀린사 측이 현대건설을 새 시공사로 선정하자 강원중도개발공사(기존 시행사)와 계약하고 기반공사를 해온 STX건설이 반발하고 나섰다. 레고랜드 건설에 반대하는 지역 시민단체들은 “강원도가 준비 없이 낙관적 기대만 가지고 공공재산의 개발에 뛰어들었다”며 “도가 땅을 100년간 무상으로 내주고, 부지 조성까지 해주고도 이익과 경제효과는 의심스러운 이 사업을 전면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재 훼손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중도에서는 우리나라 발굴 사상 최대 규모의 청동기 유적이 발견됐다. 중요 문화재가 있는 지역의 개발은 제한되는 게 정상인데, 1980년대부터 이미 유적이 발굴된 중도는 어떻게 개발 허가가 난 것일까.
매장문화재법에 따라 문화재 유존지역은 임의로 발굴할 수 없다. 건설공사를 위해 부득이한 경우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제 심의는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매장분과위)가 한다. 유적 훼손 논란에 강원도는 “문화재청의 지침을 따랐다”고,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의 심의, 현장조사, 시굴조사를 거쳐 발굴을 허가했다”고 해명해왔다. 전문가들이 결정한 대로 했다는 얘기다.
모든 사태의 주범은 정말 ‘마와 우엉’일까.
2011년 8월 26일 열린 매장분과위에 강원도가 신청한 ‘하중도 관광지개발사업부지 내 유적 발굴’이 심의 안건으로 올랐다. 여기서 발굴 불가를 결정했다면 중도 개발은 불가능했다. 이날 안건 참고사항에는 “마와 우엉 등 심경작물이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어 지표하에 매장돼 있는 유적의 보존에 급격한 영향을 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쓰여 있다. 내버려 두면 뿌리가 긴 식물이 유적을 훼손하니 발굴이 시급하다고 강원도가 주장한 것이다.
문화재위원 3명이 그해 9월 15일 중도를 현장 조사했다. 그리고 “시굴 대상지의 50% 정도가 마·우엉의 경작으로 인하여 유적의 훼손이 심각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의문 하나. 회의록에 ‘○○○’로 기록된 당시 현장 조사위원들은 무엇을 근거로 땅속 깊이 묻힌 유적의 훼손이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했을까? 확실한 건 나중의 발굴조사 결과 작물로 인한 유적 훼손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해 9차 매장분과위(9월 23일)는 중도 61만여 m²의 발굴을 가결했고, 문화재청은 그해 10월 17일 시굴조사를 허가했다.
고고학자인 심정보 한밭대 명예교수(69)는 23일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 교수는 대규모 발굴조사가 시작된 뒤인 2013년 5월부터 2015년 4월까지 매장분과위원장을 지냈다.
그럼 ‘한국고고학 역사상 최대의 청동기 마을유적’ 위에 테마파크가 들어서게 된 건 강원도와 고고학자들이 유적의 안위를 지나치게 염려한 탓일까.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76)을 최근 만났다. 2011년 5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지 이사장은 매장분과위 위원장을 지낼 당시 시굴조사와 발굴조사를 승인했다. 1980년대 초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장 재직 시절 중도를 직접 발굴하기도 했다. 당시 조사단은 발굴 조사를 5차례 했고, 보고서를 5권 냈다.
―중도 개발을 위한 발굴을 애당초 왜 승인했나.
“중도에서 유구가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지 이사장)
시굴조사 뒤인 2013년 4월 매장분과위는 “건축 계획은 발굴 결과에 따라 재검토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아 본격 발굴 허가를 내줬다.
2013년 10월 본격 발굴을 시작했다. 이듬해까지 둘레 약 404m(면적 약 1만 m²)의 한반도 최초 발견 방형(方形·네모) 환호(環濠)를 비롯해 주거지 925기, 수혈 364기, 지석묘 100기를 비롯해 1412기의 유구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매장분과위원장인 심정보 교수는 “유구가 어마어마하게 나왔다”고 회고했다.
―그때라도 개발을 전면 중지시킬 수 없었나.
“강원도가 레고랜드를 만든다고 수백억 원을 들였고 발굴조사를 했는데, 사업을 못 하게 했다면 ‘전 문화재위가 허가했는데 왜 못 하게 하느냐’고 소송이 들어왔을 것이다. 매장분과위원들이 환호 주변이라도 보호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심 교수)
심 교수는 “환호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하겠다고 문화재청장에게 발언도 했다”고 회고했다. 2014년 9월 매장분과위는 환호와 주거지를 복토(覆土·흙을 덮음)해 보존하고, 상부에 유적의 성격을 살리는 재현 방안을 마련하라고 결정했다. 묘역식 지석묘는 이전 복원을 결정했다. 논쟁 끝에 2016년 3월 환호 지역을 보존구역으로 새로 설정하는 최종 절충안이 나왔고, 레고랜드를 이 계획대로 건설할 예정이다.
건설 계획을 살펴보자. 환호와 인근 구역은 복토해 보존하고, 그 위에는 청동기시대 방형 환호와 대형 주거지 모형을 재현한다. 지석묘도 여기에 이전한다. 이게 유적공원이다.
유적공원 이외의 다른 곳은 어떨까? 유적공원이 되는 곳 서남쪽 구역에도 중도유적의 대표적 유구라 할 만한 주거지 약 1000기가 밀집해 있다. 이곳을 흙으로 덮은 위에 레고랜드 시설과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확인된 유적은 복토해 원형 보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고 밝혔다. 흙을 덮었으니, 땅속에 원형이 보존된다는 게 문화재청 해명이다. 땅속 유적 위로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서는 걸 원형 보존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렸다.
중도 발굴이 ‘초스피드’로 이뤄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청동기시대 중도는 춘천 일대의 손꼽히는 도시였을 것”이라면서 “이 정도 규모라면 당연히 수십 년을 두고 천천히 조사를 해야 한다”고 썼다. 이번 중도 발굴은 2013∼2017년 5년 동안 진행했다.
개발 반대와 중도 유적 보존 활동을 벌여 온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75)는 기자에게 발굴 현장 사진 2장을 보여줬다. 그가 2016년 8월 23일 국회의원을 대동하고 방문해 찍은 사진에는 지석묘군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0월 27일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에는 지석묘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지석묘가 15기 있었다. 그리고 그 40cm 아래서 지석묘 3기와 목관묘 1기가 확인됐다. 그러니 모두 19기다. 19기를 두 달 만에 걷어내고 철거를 한 거다. 이건 해치웠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문제는 발굴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졸속 발굴 주장이 옳은지 틀린지도 검증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 고고학자는 중도 발굴 당시 현장을 참관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참관하려고 가면 입구에서 막아버렸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아지고, 항의를 하니 뒤늦게 마지못해 몇 군데 공개했는데 가보면 다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이 학자는 “고고학 발굴의 핵심은 공개”라며 “혹시라도 누군가 졸속 발굴할 마음을 품고, 정보를 통제한 뒤 파버리면 발굴을 제대로 한 것인지 나중에는 검증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11월 발굴이 끝났음에도 정식 발굴보고서 발간이 지체되는 것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문화재 ‘구제 발굴’의 근본적인 문제도 거론된다. 구제 발굴은 토목이나 건설 공사에 앞서 유적을 발굴해 ‘구제’하는 걸 말한다. 그러나 연구와 보존보다는 개발을 위해 ‘해치우는’ 측면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이형구 교수는 “중도 역시 테마파크와 호텔을 지으려니 전면 발굴하는 것이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일부만 발굴하고, 대부분 원상태 그대로 놔둬 기술이 더 발전한 뒤 후손들에게 조사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로마 유적도 상당수가 지하에 그대로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고고학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학회의 학회장을 지낸 교수 한 분이 찾아와 말했다. ‘정말 죄송하다. 학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고….”
레고랜드 개발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오동철 춘천역사문화연구회 사무국장(58) 말이다. 고고학계가 개발 반대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사정’은 무엇일까.
한 고고학자는 학자 역시 ‘발굴권’ 앞에서 ‘을’일 뿐이라고 털어놨다. “교수들도 구제 발굴을 한다. 발굴 허가는 문화재청이 낸다. 한마디로 문화재청이 고고학자에게도 ‘갑’이다. 발굴 용역으로 무시하지 못할 금액이 오가는데, 그걸 받아 발굴하는 이들이 정부나 지자체에 대놓고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정부가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종속시키고 있는 거다.”
중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강인욱 교수는 “강원 지역에 살았던 예맥족의 선조”라고 봤다. 이형구 교수는 “나중에 백제를 건국한 세력”이라고 본다. 그들을 뭐라고 부르건 간에 중도에 살았던 이들이 한국인의 한 기원을 이룬다는 건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 중도 유적은 시대적으로 신석기부터 청동기, 철기까지 우리나라 고대사를 관통한다. 유구 3090기(청동기 환호 1기, 원삼국 환호 1기, 주거지 1423기, 지석묘를 비롯한 분묘 166기 등)를 발견했다. 환호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주거 공간, 생산 공간, 경작구역, 분묘 구역이 질서 있게 분할돼 마치 고대의 기획 도시와 같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물도 9222점(금 귀걸이, 토기 등)이나 나왔다. 특히 집 자리에서 출토된 비파형동검을 두고 “동북아 청동기시대 연구에 획을 긋는 자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비파형동검은 거의 예외 없이 고인돌 같은 특수한 무덤에서만 발견됐다. 그러나 중도 유적의 발굴로 집에서 사용될 정도로 일반화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각종 규제로 개발에서 소외된 이들의 심정은 사실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오동철 사무국장은 “춘천은 상수원 보호 등 각종 규제로 개발에서 소외돼 지역이 낙후했다는 인식이 강한 게 사실”이라며 “일자리가 1만 개 창출된다고 하니 지역민들이 대단한 사업으로 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꼭 이처럼 가치가 높은 유적지를 개발해야 했을까.
만약 경주의 고분군을 묻어버리고 위에 산업단지를 조성하면 어떨까. 이런 발상이 불쾌한 까닭은 한국인이 누구인지 말해주는 문화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000년 넘게 한곳에서 사람들이 산 흔적을 간직한 춘천 중도는 ‘청동기시대의 천년고도 경주’라고도 할 수 있다. 영국은 스톤헨지가 있는 솔즈베리 평원을 통째로 보존한다. 중국은 랴오닝(遼寧)성 우하량의 홍산문화 유적에 유리돔을 씌웠다. 일본은 중도보다도 규모가 작은 요시노가리 유적의 개발을 중단시키고, 역사 공원으로 보존시켰다.
만약 레고랜드 건설 사업 중단을 결정한다면 강원도가 이미 쓴 돈은 매몰비용이 된다. 계약 해지로 인한 파장도 작지 않을 것이다. 평소 5000년 역사의 문화민족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우리는 한반도에서 면면히 사람이 살았던 증거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