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내달 7일 개막
17년만에 한국인 총감독 이숙경
전세계 작가 79명 다양한 전시
“개인적이면서 세계적 스토리”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예술총감독의 손에서 열린다. 주인공은 국제 미술계에서 20여 년간 활동해 온 이숙경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사진). 이 감독이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 펼쳐낼 주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는 도덕경의 한 구절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 개막(4월 7일)을 한 달 앞두고 10일 이 감독을 만났다.
● “부드럽지만 강한 예술의 힘 보여줄 것”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전시관은 물론이고 국립광주박물관, 무각사, 호랑가시나무 등 광주의 5개 전시 공간에서 펼쳐진다. 세계 각국에서 작가 79명이 참여하며 이 중 40여 명이 신작을 선보인다.
이 감독은 비엔날레 주제가 “물이 아닌 힘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도덕경에서 ‘유약어수’는 “세상에서 물이 가장 부드럽고 약하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는 구절의 일부다. 이 감독은 “물처럼 부드럽고 여린 태도가 결국은 바위를 뚫듯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인데,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니 결국 권력에 관한 말”이라며 “누군가의 마음에 스며들어 감동을 주고, 때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기까지 하는 예술이 바위를 뚫는 힘을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주제는 팬데믹 동안 내적 성찰을 통해 나오게 됐다고 한다. “영국 전역이 록다운(이동 제한)돼 외출할 수 없을 때 그간 못했던 독서를 했죠. 그러다 동양의 고전을 다시 봤고, 저의 지적 뿌리가 그곳에 있음을 깨달았어요. 유교적 집안에서 자랐는데, 어릴 적 할아버지께서 하셨던 ‘꼿꼿하게만 해서는 상대를 이길 수 없다’ 같은 말씀이 오랜 지적 전통에서 나온 것임을 새삼 깨달았죠.”
● 개인적인 것에서 세계적인 것으로
전시의 4가지 소주제는 ‘은은한 광륜’과 ‘조상의 목소리’, ‘일시적 주권’, ‘행성의 시간들’이다. 첫 주제 ‘은은한 광륜’에서는 광주의 정신을 영감의 원천이자 저항과 연대의 모델로 삼은 작품을 선보인다. 이 주제는 근대주의 비판, 탈식민주의, 생태와 환경 등으로 확장되면서 변주된다. 이 감독은 “아주 개인적이고 특수한 이야기에도 세상과 공명하는 보편적인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했다”며 “참여 작가들도 개인적 삶이나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 젠더 등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내는데,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것으로 엮어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홍익대 대학원 재학 중이던 24세 때 최연소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됐다. 이후 영국 에섹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2007년 테이트 미술관 최초의 동양인 큐레이터가 됐다. 요즘은 테이트 미술관에 다양한 국적의 큐레이터들이 일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6일 입국한 이 감독은 6주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다. 그는 “이렇게 오래 한국에 있는 것은 25년 만에 처음”이라며 “어딘가 안심이 되고 안정적인 느낌이고, 광주에 연고는 없지만 특별한 관계가 생겨난 느낌”이라고 했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열렸을 때 가 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전시를 보러 오신 것을 보고 감동받았어요. 이번에도 관객이 많이 오실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휴식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으니, 마음의 안정과 영감을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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