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전 세계 79명 작품, 광주에 흐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7일 03시 00분


광주비엔날레 오늘 5곳서 개막
이숙경 감독, 英 테이트 경험 살려
동선 최대한 넓히고 설명 최소화
쉽고 친절하게 ‘치유 메시지’ 전달

유지원 작가의 작품 ‘한시적 운명’(2023년). 광주=뉴시스
유지원 작가의 작품 ‘한시적 운명’(2023년). 광주=뉴시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의 힘에 관심 있는 작가를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습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는 5일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7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에서 차용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란 주제로 전 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과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적을 떠나 예술가 개개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 기관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이끌었던 경험이 전시에 녹아들어 있었다.

● 광주에서 보는 테이트 큐레이팅

이 감독의 광주비엔날레는 쉽고 친절하되, 원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팅을 연상케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작품으로 압도하는 통상의 비엔날레와 달리 작품 수를 줄이고 가벽도 최소화해 동선을 넓게 확보했다.

과테말라 출신 작가 에드가르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년). 광주=뉴시스
과테말라 출신 작가 에드가르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2023년). 광주=뉴시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전시 안내문도 큼직한 활자와 짧은 분량이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의 의도를 눌러 담은 빼곡한 줄글이 아니라 간결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전시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관객은 상세한 설명을 담은 포켓북인 ‘가이드북’을, 심층적인 분석은 도록을 참조하면 된다. 자유롭게 보고 싶다면 텍스트의 방해 없이 즐기되, 궁금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테이트 미술관은 벽면의 작품 설명과 전시 소개글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의 첫 번째 섹션 ‘은은한 광륜’에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이 5·18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목판화(가운데)와 한국의 유명 판화 작가 오윤의 작품(뒤쪽 벽)이 함께 전시돼 있다. 왼쪽 벽면에는 여성의 일상 공간을 표현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까시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광주=뉴시스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의 첫 번째 섹션 ‘은은한 광륜’에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이 5·18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목판화(가운데)와 한국의 유명 판화 작가 오윤의 작품(뒤쪽 벽)이 함께 전시돼 있다. 왼쪽 벽면에는 여성의 일상 공간을 표현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까시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광주=뉴시스
시각적으로 유사성이 있는 작품을 가까이 배치해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테이트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첫 번째 섹션 ‘은은한 광륜’ 전시장에서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이 5·18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목판화의 앞뒤에는 한국의 대표적 판화 작가 오윤(1946∼1986)의 작품이 전시됐다. 여성의 일상 공간을 다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까시미의 작품과 한국의 주거 공간 및 재개발을 다룬 유지원의 설치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 각자의 자리에서 치유와 연대로

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였다. 전시 구성도 소주제인 광주 정신(은은한 광륜)에서 탈근대주의(조상의 목소리), 탈식민주의(일시적 주권), 생태·환경(행성의 시간들) 등 큰 주제로 점차 확장된다. 이 감독은 “모든 것은 구체적 이야기에서 시작되며, 그러한 목소리가 더 진정성이 있고 멀리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각자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깊이 파고들면, 사회의 중요한 문제나 지구적 이슈까지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광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 전시된 일본 작가 모리 유코의 작품 ‘I/O’. 광주=뉴시스
광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 전시된 일본 작가 모리 유코의 작품 ‘I/O’. 광주=뉴시스
광주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알리자 니센바움이 ‘신명’ 구성원을 그린 회화, 시각 장애 학생과 함께한 엄정순 작가의 설치 작품 ‘코 없는 코끼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할머니에게 배운 벽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막가보 헬렌 세비디의 인물화는 소소한 주변에 관심을 갖고 치유와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까지 총 5개 장소에서 펼쳐진다. 7월 9일까지. 5000∼1만6000원.

#광주비엔날레#5곳 개막#전 세계 79명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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