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테이트 모던 개관 주도 모리스
이대 명예석좌교수로 강단에 서… 11일 ‘변혁의 생태학’ 공개 강연
내달엔 강릉서 국내 첫 큐레이팅… “서울 생활-한국 작가들에 끌렸다”
2000년 영국 런던 동부 템스강 변 흉물로 방치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미술관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었다. 거대한 중앙 공간 ‘터빈 홀’ 내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1)의 초대형 거미 작품을 비롯해 화력발전소의 기계 장치 대신 예술 작품이 곳곳에 채워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미술관은 낙후된 사우스뱅크 지역을 활기차게 바꾼 것은 물론이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
테이트 모던 개관을 주도하고 2016년부터 2022년까지 관장을 지낸 프랜시스 모리스(65)가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명예 석좌교수로 국내 강단에 선다. 첫 강의를 마친 3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만난 모리스는 “그간 서울에 오면 미술관이나 갤러리만 ‘찍고 떠나’야 했는데, 이번엔 길거리도 거닐고 지하철도 타면서 서울을 제대로 경험할 것”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 테이트 모던, MoMA와 퐁피두가 모델
모리스는 이화여대로부터 교수직 제안을 받고 “늘 궁금했던 서울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고 문경원처럼 활동 중인 작가로 구성된 교수진과 일한다는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11일 ‘테이트 모던: 변혁의 생태학’을 주제로 공개 강연에 나서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대학원생에게 ‘현장 비평I: 예술과 비평’ 강의를 한다.
강의는 미술관 건축에서 시작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 사립 미술관과 미술 시장 등의 주제로 이어진다. 건축으로 시작하는 이유를 묻자 모리스는 “미술관 체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건축”이라며 “테이트 모던은 20세기 대표적 미술관 모델인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1970년대 급진적이고 독특한 문화를 담은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의 요소가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테이트 모던은 개관했을 때 소장품의 파격적 배치로도 논란을 빚었다. 통상 미술관은 시대별 사조를 시간 순서로 보여주는데, 테이트 모던은 이를 깨고 장르와 주제별로 작품을 배치했다. 개관 당시 디스플레이 총괄 큐레이터였던 모리스는 “어떤 작품도 한 가지 맥락으로만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관객이 미술사를 다 아는 것도 아니므로 각자 방식대로 감상할 기회를 마련하자는 취지였다”고 했다. ● 루이즈 부르주아, 거미 같은 여자
모리스는 테이트 모던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구사마 야요이 등 여성 작가를 조명한 회고전을 열고 이들을 ‘스타 작가’로 만든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특히 부르주아는 1995년 함께 첫 전시를 열고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부르주아에 대해 “늘 두려웠다”고 회고했다.
“제 질문에 언제나 탐탁지 않은 반응이었어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이라도 하면 말없이 일어나 자리를 떠나기도 했죠. 그러다가도 제가 딸기잼을 사 가면 갑자기 조수를 불러 스푼을 가져오라 하고 그걸 셋이 작은 의자에 앉아 나눠 먹기도 했어요. 부르주아는 자기 엄마를 거미라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거미 같은 신비로운 여자였습니다.”
여성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 밖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작가를 발굴해 온 그는 5월 4일 강원 강릉 솔올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추상 화가 아그네스 마틴의 국내 첫 개인전을 큐레이팅하고 9월 3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이화여대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이마프(EMAP)’의 좌장으로 참여한다. 모리스는 “마틴의 아름다운 작품을 백색 공간에 펼쳐 놓아 관객에 커다란 기쁨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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