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국가유산기본법 시행
문화-자연-무형유산 체계 개편… 보존중심 정책서 ‘활용 중시’로
개발규제-국외반출 일부 완화… 국가유산 관련 산업도 활성화
17일부터 62년간 유지되던 ‘문화재’ 용어가 ‘국가유산’으로 바뀐다. 이날부터 국가유산기본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보존’→‘활용’이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등 기존의 문화재 보존에 치우쳤던 각종 규제가 완화되고, 관광 자원화 등 국가 유산의 활용에 탄력을 기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장 법이 시행되지만 문화유산 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미흡하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라 문화재는 국가유산으로, 주무 관청인 문화재청은 국가유산청으로 각각 명패를 바꾼다. 문화재가 재화 개념에 가까워 사람이나 자연물을 포괄하기 어려운 데다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산(heritage)이란 용어를 폭넓게 사용하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 등으로 나눠 정부가 관리해온 분류체계도 문화유산, 자연유산, 무형유산으로 좀 더 단순하게 바뀐다.
● 보존지역 500m→200m 등 규제 완화
이번 변화의 핵심은 보존을 최우선으로 했던 기존 문화재 정책 목표가 문화유산의 가치를 향유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데 있다. 일각에서 ‘지역 개발의 걸림돌’ 혹은 ‘재산권 침해’로 여겨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기존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정 문화재로부터 반경 500m 이내 지역에서의 건설 공사는 인허가 전 행정기관의 사전 검토를 받아야 한다. 2021년 일부 건설사가 경기 김포시 장릉 500m 이내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 문화재청이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논란이 된 게 대표적이다.
이에 국가유산청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주거·공업·상업 지역에 대해선 최대 200m 이내로 현상변경 제한 범위를 완화했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부산 동삼동 패총 등 일부 사적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고, 향후 완화 범위를 더 늘릴 방침이다.
또 제작된 지 50년이 넘은 ‘일반 동산문화재’의 국외 반출을 제한하는 규정도 풀기로 했다. 1946년 이후 만들어진 미술 작품은 제한 없이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과 맞물려 국내 미술품에 대한 해외 수요를 촉진하기 위한 취지다.
● 전국 문화유산 ‘스마트폰 해설’도
국가유산의 가치를 알리고 공유하기 위한 사업도 추진된다. 딱딱한 문화관광 안내판 등에서 벗어나 스마트폰만으로 전국 문화유산의 해설을 체계적으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같은 문화유산을 여러 번 봐도 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박물관 도슨트처럼 전국 문화유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해설 체계가 갖춰지면 관광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유산기본법에 산업 육성을 명시해 추진하는 것도 주목된다. 국가유산을 매개로 하는 콘텐츠나 상품의 개발, 제작, 유통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관련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 지방 관광 진흥과 맞물려 문화유산을 활용한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문화유산 활용에 대한 청사진이 여전히 미흡해 자칫 용어나 조직 변경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비지정 문화재인 일부 고궁 전각을 숙박시설로 활용하려다가 여론의 반발로 무산된 ‘궁스테이’ 정책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치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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