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에 작업실 둔 인연으로
‘백봉초 그림잔치’ 열다 별세후 중단
“순수한 아이들 그림서 배우려 해”
1996년 9월 6일 충북 괴산군의 백봉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백봉 어린이 그림잔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잔치는 1990년 이화여대 동양화과 교수직을 내려놓고 괴산 작업실에서 그림에 열중하던 황창배 작가(1947∼2001)가 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 뒤 자녀들이 7회까지 열고 멈췄던 ‘백봉 어린이 그림잔치’가 22년 만에 다시 열렸다.
황창배가 어린이 그림 잔치를 열었다는 사실은 유족의 기억에만 남아 있었다. 황창배의 아내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은 “황창배는 그림에서 기교만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일부러 왼손으로 그림도 그렸다”며 “아이들을 위해 잔치를 열어주는 것은 물론 본인도 아이들의 그림에서 배우려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림 잔치가 다시 열린 건 이근우 중원대 교수가 학교에서 관련 기록을 찾아낸 것이 계기였다. 학교 자료실에는 당시 사진과 팸플릿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최인숙 백봉초 교장은 “유명 화가가 지역 학교를 찾아와 학용품을 나누어주고 그림 잔치를 열어준 것은 지금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과거 기록을 토대로 올해 열린 ‘제8회 백봉 어린이 그림 잔치’에는 유치부 학생 10명을 포함한 백봉초 전교생 56명이 참가했다. 14∼17일 학교 체육관에서 전시를 열었고, 20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서대문구 황창배미술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20일 전시장에서 만난 황창배의 작업실 이웃 이처용 씨(69)는 “그림 대회를 열자 하니 황창배가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왜 순위를 매기냐’며 잔치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회고했다. 3∼6회에 자녀들이 참여한 한석호 씨(64)는 “아이들을 칭찬하고 때로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짓던 황창배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