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가 붙잡은 밤, 그리고 무의식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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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한미 ‘밤 끝으로의 여행’展
국내외 32명의 작품 100여점 선봬

검바이크로메이트 인화법으로 회화 같은 효과를 낸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플랫아이언 빌딩’(1904년). 뮤지엄한미 제공
검바이크로메이트 인화법으로 회화 같은 효과를 낸 에드워드 스타이컨의 ‘플랫아이언 빌딩’(1904년). 뮤지엄한미 제공

미국 뉴욕의 상징적 건물 중 하나인 ‘플랫아이언’. 1904년 룩셈부르크 출신 미국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컨은 우뚝 솟은 이 빌딩을 안갯속으로 사라질 듯 희미하게, 그리고 한가운데로 가로수의 나뭇가지가 팔을 뻗듯이 겹친 모습으로 묘사한다. 비가 내려 축축한 길 위로는 조명만 반짝인다. 분주했던 도시가 마치 잠에 빠져든 것 같은 광경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플랫아이언 빌딩’(1905년), 이 작품은 작가가 회화처럼 사진에 감성을 담은 ‘픽토리얼리즘 운동’을 알린 역사적 의미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폴 앨런이 소장했던 원본이 2022년 경매에서 1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주목받은 ‘플랫아이언 빌딩’의 다른 버전이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열리는 기획전 ‘밤 끝으로의 여행’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 전시는 ‘밤’을 주제로 국내외 32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뮤지엄한미에 전시된 ‘플랫아이언’은 1906년 사진 잡지에 싣기 위해 만든 인쇄본이다.

밤의 곤충을 포토그램으로 포착한 자나 브리스키의 ‘후드 사마귀 #1, 보르네오’(2019년). 뮤지엄한미 제공
밤의 곤충을 포토그램으로 포착한 자나 브리스키의 ‘후드 사마귀 #1, 보르네오’(2019년). 뮤지엄한미 제공
전시는 ‘플랫아이언 빌딩’처럼 어두운 밤 고요한 도시의 모습은 물론이고 들개, 곤충 등 자연을 담은 작품들로 시작한다. 영국 작가 자나 브리스키는 밤에 지나다니는 곤충을 찍기 위해 빛으로 유인하거나, 감광지를 놓고 오랫동안 기다리다 곤충이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어둡게 연출된 조명 속에서 곤충과 동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각이 더 예민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후 전시는 사람의 내면 속 어두운 곳, 무의식의 세계로 더 나아간다. 사진 위에 드로잉을 하거나 관련 없는 두 소재를 포토몽타주(합성)해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 브라사이, 제리 N 율스만의 작품과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에로틱한 꽃 정물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900년대 초반 고전 작품부터 동시대 국내외 작품까지 폭넓게 다룬다. 전체 작품 중 66점이 뮤지엄한미 소장품이기도 하다. 26일 오후 7시에는 어두운 밤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야간 전시 투어도 열린다. 또 29일에는 참여 작가 권도연과 김태동의 작업 방식에 대해 듣는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8월 2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뮤지엄한미#전시#사진#플랫아이언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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