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활기를 북돋울 색색의 ‘깅엄 체크’(격자무늬)가 동그란 캔버스를 가득 채웠다. 멀리서 보면 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하지만, 가까이 가면 캔버스 위에 두꺼운 삼베를 덧씌워 울퉁불퉁한 질감이 살아난다. 격자무늬 하나하나가 겹치고 쌓이며 만들어진 패턴 속에서 역사와 권력 구조를 읽어낸 미국 작가 미셸 그라브너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20일 서울 강남구 에프레미디스에서 개막한 ‘깅엄 타임’은 그라브너의 신작 회화 18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집 안의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브제 속 숨어 있는 사회 구조를 읽어내고 추상 회화로 표현해 왔다. 격자무늬는 18세기 영국이 공업화하며 등장해 누구나 화려한 무늬를 즐기도록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다. 그 이전에 무늬는 손바느질로 수를 놓아 귀족들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여성 노동의 변천사나 꾸밈에 대한 욕구를 담은 격자무늬를 작가는 다시 착실한 수작업으로 캔버스 위에 옮기며 그 의미를 되새긴다.
그라브너는 시카고예술대 학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2014년 휘트니 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는 등 평론가이자 비영리 전시 공간 운영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주영 디렉터는 “작가는 전시를 기획하거나 비평을 하다가 작업실에서는 고요히 격자무늬 하나하나를 그리며 자신만의 내면세계로 빠져든다”고 전했다. 7월 2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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