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모임에서 저자가 내뱉은 한마디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가 식구들 대부분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였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의 시작을 부른 말이었다. 늘 의문이 들던 저자였다. 시가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막내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호칭을 불러주지 않았다. 제수씨 아니면 동서, 혹은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늘 자상하던 시부모님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흔쾌히 이 같은 제안을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 일들만 다가왔다. 특히 저자와 동갑이었던 남편 형의 부인인 ‘형님’ 반발이 컸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며 “아랫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아주버님 일갈까지. 사회 관습에 기대던 이들과의 다툼 끝에 저자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한다.
저자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 대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저자는 지금까지 작지만 큰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가족 내에서 실제로 호칭 개선을 위해 싸워 본 저자의 여정을 담아냈다. 가족 호칭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서열화된 언어문화까지 짚어낸다.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4월 동아일보 연중기획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어색한 친인척 호칭 편’이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같은 해 9월 호칭 개선 내용을 담은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늘 쓰는 가족 호칭의 어원을 뜯어보면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강하게 배어있다.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고, ‘올케’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
저자는 이처럼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이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호칭 문화가 바뀌어야 가족 모두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더 나아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민정님!”
올해 1월 저자는 시부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년여 투쟁 끝에 시작한 가족 내 작은 변화다. 호칭 문제를 넘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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