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막을 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최고의 스타는 이강인(18·발렌시아)이었다. 한국이 준우승했지만 FIFA는 그를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골든볼 수상자로 선정했다. 2골 4도움으로 활약한 측면도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보여준 킬 패스와 명품 크로스는 지구촌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강인의 활약이 돋보이면서 이강인의 ‘슛돌이’ 시절(2008년 KBS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부터 스페인 유학 시절까지의 성장 스토리가 조명되고 있다. 최근 소속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까지 이끈 손흥민(27·토트넘), 11일 이란과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백승호(22·지로나 FC)도 일찌감치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들을 둘러싼 ‘축구 유학’이 관심을 끌고 있다. 손흥민은 17세인 2009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백승호는 13세인 2010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바르사) FC에 몸담고 성장했다. 이들의 부모들은 “운이 좋았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3명이 성공한 공통분모는 어릴 때부터 기술을 습득한 뒤 선진 축구 시스템 속에서 상황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축구 본능’을 이식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이강인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축구를 시작했다. 태권도사범을 하는 축구광 아버지 이운성 씨는 초등학생들에게 도장에서 축구를 가르쳤다. 돌잡이 때 축구공을 두 손으로 들었다는 이강인은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도장에 다니는 초등생 형들과 에어매트 위에서 매일 축구를 하며 어울렸다. 형들이 빠져나간 후엔 아버지를 상대로 연습을 거듭했다. 이강인은 8세이던 2009년 K리그 인천 유나이티드 유소년팀을 거쳐 2011년 발렌시아 유소년팀의 테스트를 받고 입단했다. 이강인의 부모는 아들이 축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스페인 발렌시아로 갔다. 이강인은 2011∼2012시즌부터 프리메라리가 알레빈C(10∼11세)리그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 시작했다.
손흥민도 강원 춘천시에서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아버지 밑에서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장난감 공을 갖고 놀았다. 잘 알려진 대로 손흥민은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 출신 아버지 손웅정 씨의 ‘개인훈련’을 받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미래에 투자했다. 볼 리프팅(양발로 볼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차기)과 드리블, 트래핑(자신에게 오는 볼을 안전하게 컨트롤하는 기술) 등 기본기 훈련을 시켰다. 최근 빛을 발하고 있는 슈팅력은 어릴 때부터 하루 수백 번씩 한 훈련의 결과다. 페널티지역 및 외곽의 중앙과 좌우, 골을 터뜨릴 수 있는 곳에서 오른발 왼발로 각각 100회 이상 슈팅을 날렸다. 이런 기본기가 원동력이 돼 손흥민은 2008년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4골), 2009년 FIFA 17세 이하 월드컵(3골)에서 맹활약했고 한국 축구 레전드 차범근이 활약했던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백승호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전문적인 조기교육을 받았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공을 가지고 노는 늦둥이 아들을 보고 아버지 백일영 연세대 교수(체육교육과)는 만 5세 때인 2002년 5월 어린이날 선물로 ‘김진국 축구교실’에 들어가게 해줬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는 ‘이회택 축구교실’로 보내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가도록 했다. 백승호는 2009년 한국유소년축구연맹(12세 이하)이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개최한 국제대회에 출전했고 바르사 유소년육성팀장의 눈을 사로잡아 2010년 바르사 유니폼을 입게 됐다.
지금도 매년 스페인에서 국제대회를 개최하며 유망주들의 해외 진출을 돕고 있는 유명환 한국유소년축구연맹 사무국장은 “이강인과 손흥민, 백승호가 성공한 이유는 축구를 일찍 시작해 이미 국내 최고 수준에 도달한 뒤 ‘정글’ 같은 유럽 시스템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축구 기술은 10세면 더 이상 발전이 되지 않는다. 이강인 등은 10세 이전부터 축구 기술을 익혔기 때문에 스페인과 독일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유럽은 10세 이후엔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럽에 간다는 발상은 난센스다”고 강조했다. 일본 J리그 오이타트리니타에서 유소년강화부장을 했던 황보관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실장도 “축구는 가급적 일찍 시작해야 한다. 기술뿐만 아니라 육상, 기계체조 등으로 기초체력을 함께 기르면 훨씬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유소년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프리메라리가 구단들은 7세부터 12세까지 5개 그룹으로 나눠 7인제나 9인제 축구를 가르친다. 프레벤하민(7∼8세), 벤하민 C, D(8∼9세), 벤하민 A, B(9∼10세), 알레빈 C, D(10∼11세), 알레빈 A, B(11∼12세)로 나뉜다. 그룹별로 11명을 엔트리로 정한 뒤 좁은 공간에서 볼을 다루고 패스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키운다. 12세부터는 그라운드 전체를 쓰는 11인제 축구를 본격적으로 가르친다. 12∼18세는 인판틸 A, B(12∼14세), 카데테 A, B(14∼16세), 후베닐 B(16∼18세)로 나뉜다. 각 그룹 수준별로 20, 21명이 엔트리다. 18세를 넘어가면 본격적인 프로 선수가 된다. 모든 그룹은 주말에 홈 앤드 어웨이 리그 경기를 한다. 각종 국제대회에도 자주 출전한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덩치 큰 선수, 기술이 좋은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유명환 국장은 “유럽에선 상황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축구 DNA를 심어준다”고 말했다.
프리메라리가 유소년팀에 입단했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매년 평가에서 기대 이하인 선수는 가차 없이 솎아 낸다. 백승호와 현지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어머니 김미희 씨는 “승호 친구가 매년 8명 이상이 바뀌었다. 많을 땐 13명이 바뀐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매년 좀 더 나은 선수를 스카우트해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바르사 유소년팀에 있어도 1군 선수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2∼4년에 1명꼴로만 1군 선수가 나온다.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스페인) 등은 이 바늘구멍을 통과해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전문가들은 축구 유학을 떠날 때는 선수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영균 한국유소년축구연맹 회장은 “우리 부모들이 착각하면 안 된다. 손흥민 등은 이미 국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갔고 독일에서도 고생하면서 성장했다. 독일 스페인에 간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1999년부터 10년간 독일에서 축구 지도자 공부를 하고 온 김태엽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는 “현지 사정을 전혀 모르고 오는 선수가 많았는데 대부분 실패하고 돌아갔다. 유럽은 훌륭한 자국 선수들도 있고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몰리는 곳이다. 대부분 한국에서 잘 안되는 선수들이 오는데 정말 무모한 짓이다”고 말했다. 유럽 명문 구단들은 해외 선수가 유스팀에 입단하려면 반드시 부모가 함께 이주하도록 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정서적 안정과 교육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진출한 18세 이하 선수는 총 45명이었다. 독일이 32명으로 가장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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