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보며 정보 전문가들은 장탄식을 쏟아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 한가운데로 한국이 끌려들어가게 됐다는 것. 북한 때문에라도 한국은 미·중 갈등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자충수(自充手)로 더 깊이 말려들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은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다. 한국 정부는 ‘한국이 일본에서 수입해간 전략물자의 사용처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자 그것에 대한 맞불로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바 있다.
이민트, 시긴트, 휴민트
그러한 결정의 저변에 위안부 합의 파기, 징용자 재판 등 문재인 정부의 ‘항일 투지’가 숨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다툼에서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라는 카드를 뽑아 든 것은 지소미아 덕분에 한국이 얻는 일본발(發) 정보보다 일본이 받아가는 한국발 정보가 많다는 극히 실리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일본이 더 손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에 ‘협상카드’로 선택했으나, 오히려 자충수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압도적으로 많은 북한 정보를 받고 있다. 다음은 한 관계자의 얘기다.
“한미 정보기관 사이에는 대용량의 광통신망이 있다. 이를 통해 미국 첩보위성이 찍은 북한 사진이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그러다 북한군 TEL(이동식 발사차량)의 이동이 발견되면 정보 관계자들은 자다가도 사무실로 달려가야 한다. 무슨 미사일을 실은 몇 대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 뒤 해당 정보를 지상군작전사령부, 공군작전사령부, 해군작전사령부, 해병대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보가 가면 각 작전사령부는 대응 작전을 짜느라 난리가 난다. 정보부대들은 그사이 더 많은 판단을 내려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합참), 각 군 본부, 청와대, 국가정보원(국정원) 등에 배포한다.”
그가 설명한 것은 IMINT(이민트)라고 하는 영상정보다. 한미는 정보보호협정을 맺은 바 없다. 그런데도 미국이 광통신망을 깔아 실시간으로 이민트를 제공하는 이유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미국은 이 조약이 모든 것을 포괄한다 보고 정보보호협정 같은 세세한 협정은 맺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북한 정보를 주고 있다. 이 정보로 한국군이 신속히 대응해 북한이 몰래 준비하던 도발이 사그라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신호정보로 번역되는 SIGINT(시긴트)도 있다. 북한이 주고받는 유무선 및 데이터링크 통신을 낚아채 분석한 정보로, 쉽게 말하면 감청이다. 그런데 북한은 바보가 아니니, 음어 통신을 한다. 암호로 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호정보에는 중요한 정보가 오갈 수 있다. 이민트로 본 현실에 숨어 있는 북한의 의도를 알려면 감청으로 잡아낸 이 암호를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 불규칙해서 그렇지, 모든 암호에는 논리가 있다. ‘강아지라고 하면 발사할 것’이라는 식으로 약속을 정해놓고 사용하는 것이 암호이니 그러한 논리를 찾아내야 한다. 다년간의 경험과 ‘모든 경우’를 다 대입해 풀어볼 수 있는 대용량의 컴퓨터와 프로그램이 있으면 해독이 가능하다. 문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 그래서 더 큰 컴퓨터로 더욱 정교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시긴트를 주로 취급하는 정보기관의 규모는 갈수록 커진다. 미국에서 시긴트를 담당하는 국가안전보장국(NSA)이 중앙정보국(CIA)보다 훨씬 큰 세계 최대 정보기관이 된 것도 그 때문이다.
NSA는 북한산 시긴트를 전문으로 하고자 한국에 ??-K라는 분소를 설치해놓았다. 그런데 한국어 분석은 역시 한국인이 잘한다. 따라서 ??-K는 신호정보를 잡아내는 각종 안테나 등 하드웨어를 제공, 관리하고 암호를 푸는 일은 한국군이 전담하고 있다. 이것 역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이뤄진 포괄적 협력이다. 한미연합사령부와도 무관한 협력이다.
공작원이나 귀순자 등 사람을 통해 얻는 인간정보 HUMINT(휴민트)도 있다. 이 정보활동은 정보 생산자를 ‘모셔올 수’도 있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해당 정보에는 오해와 과장이 많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 호되게 당한 사람은 “그는 미치광이다. 미사일을 쏠 것이다”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그의 두려움이 만든 과장일 수 있다. 공작원도 자신의 침투 능력을 부풀리니 허풍을 지워내야 한다. 이렇게 걸러내는 것을 ‘분석’이라 하는데, 분석은 과거 정보와 대비해 판단하고 유추하는 것이라 시긴트보다 긴 시간을 요구한다. 휴민트는 한국이 절대적으로 잘하는 분야다.
중국의 ‘도련정책’ 막으려는 미국
북한은 한국을 속이려고 가짜 TEL을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은 한미가 시긴트와 휴민트를 포착, 융합해야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런데 시긴트와 휴민트 생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 셋을 결합해 좀 더 완벽한 정보를 구하는 것은 일이 벌어진 다음인 경우가 많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그런 예였다. 따라서 모든 정보부대와 작전부대는 미국이 제공하는 이민트를 토대로 먼저 움직인다. 이 같은 정보의 생리를 잘 아는 정보 관계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주장했을 때 “아이고”라고 탄식했다. 성격이 급한 이들은 “정보의 ‘정’ 자, 한미연합의 ‘연’ 자도 모르는 자들이…”라며 분노했다. 미국이 지금처럼 100% 정보를 준다면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가 꼭 필요하지 않지만, 미국 측이 틀어버리면 한국은 꼼짝도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간 정보보호협정을 맺은 바 없으니 미국은 안 주겠다고 하거나 주는 양을 줄일 수도 있다. 주긴 주는데 일본을 통할 테니 일본과 지소미아를 유지해 받아가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체면은 말이 안 되게 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웃는 얼굴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에 참석해 지소미아 연장을 발표하게 한 것은 이러한 배경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즉 문 대통령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뒤늦게 ‘아차’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아차가 아차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중국은 2010년부터 남중국해 무인도에 군사시설을 갖추고 ‘이 섬 주변은 중국 영해니 타국 군함은 중국의 승인을 받고 들어오라’며 남중국해를 중국 내해로 만드는 일을 자행했다. 요즘에는 동해 역시 중국 내해라며 공군기를 동해에 집어넣어 한국과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작전을 거듭하고 있다. 황해에서는 한국 해군 함정이 동경 124도 서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력 저지하고 있다. 황해에서 중국 영해는 연안으로부터 2해리까지인데, 중국은 동경 124도까지를 중국 영해처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황해는 물론이고 동해,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전부 중국 내해로 만들겠다는 이른바 ‘도련(島鍊)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팽창정책을 막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미국은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한일 양국으로 하여금 지소미아를 맺게 했다. 양국이 주고받을 수 있는 정보는 적지만, 한미일 3국을 하나로 묶으면 미국이 유용한 정보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조는 북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소미아 카드로 美·中 사이에 말려들어
지소미아는 가장 급박한 순간에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동해와 서해에서는 한미일 이지스함이 작전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미군이 구축한 ‘링크 16’이라는 데이터 통신망에 연결할 수 있다. 북한이나 중국이 도발하면 가장 전방에 있는 이지스함이 이를 포착한다. 그리고 한일 지소미아가 살아 있으면 3국은 순식간에 이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한국은 이 정보를 대북용으로 사용하는 반면, 미국은 대중용으로 사용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 효용성은 대단하다. 반대로 미국은 막강한 대북 정보를 토대로 한일을 중국 포위전선에 동원할 수 있다.
이를 거부하면 미국은 한미동맹 위반이라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있으니 한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이때는 이익이 큰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모든 무기체계는 미군과 연동되도록 짜여 있으니 어느 날 갑자기 중국 편을 든다고 해서 중국군과 공동작전을 펼칠 수는 없다. 한미는 엮일 대로 엮여 운명공동체가 된 지 오래다. 한 군사 전문가는 미국의 힘은 상상 이상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은 냉전이 첨예한 1956년 전범국가인 서독을 무장시킨 바 있다. 단, 서독군을 서독의 국군(國軍)이 아닌,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으로만 활동하게 했다. 서독은 자국 예산과 젊은이로 군대를 만들었지만, 이 군대를 통수하는 것은 서독정부가 아니라 미국이 이끄는 NATO 사령부로 한정돼 있었다. 당시 서독은 동독과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상대하는 최전선이었으니, 미국은 서독의 힘과 젊은이를 ‘용병’처럼 동원한 것이다. 이때 서독군은 58만 명에 이르렀는데, 냉전 종식과 함께 독일이 통일된 지금은 3개 사단 18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독일은 통일했어도 여전히 자율권이 없다.”
미국은 6·25전쟁을 계기로 일본 정부에 자위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줬지만, 미군을 보조하는 역할만 하도록 한정지었다. 역시 통수권은 빼앗아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이 중국을 잡으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했으니 도련정책을 펼치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국과 일본, 대만에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사전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남중국해에서 미국 함정이 중국 함정과 밀어내기 싸움을 한 지 오래다. 미국 의회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홍콩인권법과 위구르법을 제정했다. 한일 지소미아 연장 결의안도 채택했다. 미국 여야는 중국과 패권다툼을 중요한 일로 보고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한 것이다. 따라서 지소미아 연장은 일본과 싸움이 아니라, 미국과 다툼이 돼버렸다. 미국이 제공하는 막대한 정보를 믿고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던 문재인 정부는 자충수에 빠진 것이다.
일본도 미국으로부터 받는 정보가 매우 많기에 자존심을 접어가며 한국과 지소미아를 맺을 뜻이 없었다. 그런데도 일본 총리의 사과가 포함된 위안부 합의를 한국과 맺고 지소미아를 체결한 것은 미국 측 압박 때문이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이유로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한다고 하자 일본은 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패착을 둔 것이다. 그런데 ‘뒤끝’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소미아 연장을 결정하면서 가장 화가 난 쪽은 중국이다. 홍콩 시위 사태를 겪고 있는 중국은 문재인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가 고마웠을 텐데 두 달 만에 우리가 ‘회군’해버렸으니 다른 나라들이 따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북한의 5차 핵실험을 계기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하자 경제보복을 한 것 같은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거듭된 北 도발의 배후
상당수 전문가는 북한이 거듭 도발하는 이유는 중국 때문이라고 본다. 홍콩에 쏠린 미국의 압박을 분산시키고자 중국이 북한에게 상당한 지원과 지지를 해주겠다며 도발하라고 바람을 넣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미국이 중국의 의도를 눈치채고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이라 본다.
지소미아 연장과 종료를 두고 일본과 대립하던 문 대통령은 시진핑과 트럼프 사이에 끼이게 됐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 식으로 양손에 떡을 쥐고 있겠다는 문 대통령의 선택은 두 떡 모두를 놓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만히 있었으면 될 것을 괜히 건드려 봉변을 만든 셈이다.
아베 총리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이끌 때부터 철저히 친미노선을 유지하고 있다. 왔다 갔다 한 것은 한국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등 친중노선을 걷다 중국이 북한 핵실험을 제어해주지 않자 사드 배치를 결정해 중국과 큰 마찰을 빚었다. 미필적 고의겠지만 문재인 정부도 지소미아를 꺼내 들었다 미·중 패권싸움에 말려드는 실수를 범했다는 게 안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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