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현 총리가 다녔던 70년 된 학교에 도서실-과학실 갖춘 3층짜리 건물 올려
8000m 16좌 등정 맞춰 16개 지으려다 20번째 학교 터도 마련… 내년 착공계획
“앙체링 셰르파가 여기에 학교를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11일 오후 네팔 동부 테라툼 아트라이에 있는 쉬리 프라나미 학교 운동장. 산악인 엄홍길 대장(64·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목소리에 물기가 어렸다. 이날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 오지에 새로 짓거나 증축해온 ‘휴먼스쿨’ 19번째 학교 준공식이 열렸다.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산간마을, 지은 지 70년 돼 온 벽에 금이 가고 함석지붕을 얹은 교사(校舍) 옆에 3층짜리 번듯한 건물이 들어섰다. 1985년부터 히말라야를 찾은 엄 대장의 오랜 벗이자 동료였던 셰르파 앙체링은 5년 전 헬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그가 생전에 엄 대장에게 한 부탁을 지킨 것이다.
● “홀가분하고 감개무량”
준공식에는 이곳이 고향인 카드가 프라사드 샤르마 올리 네팔 총리(72) 부부가 참석했다. 초·중·고교가 같이 있는 이 학교에서 올리 총리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녔다. 셰르파 앙체링은 수양아들로 불릴 만큼 올리 총리와 가까웠다. 학교를 지어 달라는 총리의 뜻을 엄 대장에게 전했다.
올리 총리는 축사에서 “18개 교실을 갖춘 새 학교 건물을 받은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기쁜 날이다. 몇 년 전, 인도 대사님이 오셔서 새 건물을 짓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며 “(8000m급) 16개 봉우리를 모두 오른 위대한 인물 엄 대장에게 정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새 학교 건물에는 교실 18칸과 도서실, 과학실, 교무실, 유치원 공간이 마련됐다. 교실에는 인도에서 제작해 공수한 책걸상과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네팔 산악지대 공립학교는 학생들이 1~2시간 산길을 걸어서 등교하는 일이 다반사다. 과목마다 선생님은 부족한데 정부로부터 봉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예체능 수업은 아예 없다. 건물과 시설도 낡고 열악한 곳이 많으며 학용품도 모자란다. 엄홍길휴먼재단에서는 선생님 급여와 교복비도 지원하고 있다.
이번 학교는 짓는 데 2년 6개월 걸렸다. 지금까지 지은 다른 학교보다 더 엄 대장 속을 썩였다. 학교와 학부모 간 의견 대립이 심했고, 건설현장 사무소장을 2번 교체했을 정도로 공사 진척은 더뎠다. 막바지에는 엄홍길휴먼재단 네팔지부 지원이 현장에서 숙식하며 공사 진행과 경비(經費)를 점검했다.
엄 대장도 건설 중에 2번이나 이곳을 찾았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비행기로 동남부 바드라푸르까지 40여 분을 날아간 뒤, 곳곳이 산사태로 유실돼 바위가 여기저기 떨어진 구절양장(九折羊腸) 길을 지프차로 7~8시간 타고 북상해야 겨우 도착한다. 한국에서 온 후원자들이 하루 만에 이르기에는 어려운 경로다.
엄 대장은 당시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생님과 학부모 들에게 네팔어로 말했다. “이렇게 공사가 지지부진하고, 학교를 짓는 데 비협조적인 곳은 처음이다. 학교가 지어지지 않는다면 모두 당신 어른들의 무책임 때문이다.” 올리 총리를 만나 애로사항을 얘기하며 호소도 했다. 완공까지 다른 학교보다 1년이 더 걸렸다. 엄 대장은 “너무 홀가분하고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준공식에는 박태영 주네팔 한국 대사도 참석했다. 세계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박성희 씨는 이 학교 200여 학생 등 주민 500여 명을 위해 ‘오 솔레미오’ ‘아리랑’을 비롯한 아리아 6곡을 불렀다.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이었을 이 같은 공연에 환호와 탄성,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언덕을 깎아 만든 작은 공터는 어느새 라스칼라 극장으로 변한 듯했다.
● “내년, 20번째 휴먼스쿨 착공할 것”
엄 대장은 2007년 3전 4기 끝에 마지막 8000m 넘는 봉우리 로체샤르 등반에 성공했다. 하지만 등정 전까지 몹시 두려웠다. 실패와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그는 히말라야 신(神)에게 기도했다. ‘살려주신다면 죽을 때까지 산 아래 사람들을 살피고 네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겠습니다.’
2008년 엄홍길휴먼재단을 세우고 2010년 해발 3985m 마을 팡보체에 첫 번째 휴먼스쿨을 지었다. 처음에는 16개 봉우리에 맞춰 16개 학교만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년 20차 휴먼스쿨 착공에 들어간다. 터는 이미 봐 놨다.
휴먼스쿨에 대한 그의 의지는 강렬하고 절실하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 외곽 딸께셜에 지난해 준공한 16차 휴먼스쿨은 유치원, 도서관, 초·중·고교 건물이 들어섰고 시각장애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급도 있다. 올해 네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해당하는 시험에서 이 학교 학생이 1등을 차지했다. 입학하려는 학생이 줄을 선다. 내년에 착공하는 체육관까지 건립되면 엄 대장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교육 타운’이 완성된다.
“처음에 목표를 세웠을 때, ‘될까?’ 했는데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두 7000여 재단 회원과 독지가 분들 덕분입니다. 다만 지어 놓은 다음에도 유지, 보수, 관리에 내실을 기하려면 지원할 것이 많습니다. 더 많은 후원이 절실합니다.”
엄 대장은 16좌(座)를 모두 오를 때까지 38번 도전했고 그중 18번을 실패했다. 하지만 휴먼스쿨은 실패하지 않겠다는 듯 눈빛이 번득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