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여당 핵심 의원이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한일 간 경제 전쟁에서 우리가 더 손해를 봤느냐, 일본이 더 손해를 봤느냐.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폭이 현격히 줄었다. 그러니까 일본의 손해가 훨씬 더 많다.” 이상하지 않은가. 경쟁의 기준이 이익이 아닌 손실의 규모이고, 그 경기장에서 우리가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발언은 올해 대일 무역적자가 16년 만에 최저치로 줄어들 것이라는 통계 전망을 계기로 나왔다. 적자 폭 감소가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맥주 등 소비재 수입이 감소한 때문만이라면 그나마 감정적 동의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허리인 반도체 업계 불황으로 일본산 장비 수입이 줄어든 요인이 컸다.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 중 식음료는 전체의 1%에 불과하지만 반도체 장비 등 기계류는 30% 안팎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건 교역 축소의 후과다. 올 들어 10월까지 일본으로 내보낸 수출은 6.5%, 수입은 12.8% 줄었다. 금액 기준으로 수출에서 1조9000억 원가량이 사라졌다. 가뜩이나 수출 감소로 경제 전반이 위축되고 있는데 지금 같은 마이너스 경쟁에서 우리가 덜 상처를 입었다며 뿌듯해할 일인지 이해가 안 된다.
독과점시장에서의 경쟁이라면 상대의 손실을 키워 궤멸적 타격을 주는 전략이 더러 효과적일 때가 있다. 냉전 때 미소 간 군비 경쟁이 소련 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졌듯 말이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시장의 수많은 플레이어 중 하나일 뿐이다. 일본으로 가는 한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60% 가까이 줄어든 9월, 우리는 일본의 몇몇 지방도시가 관광 수입 감소로 고전하고 있다는 보도에 내심 흐뭇해했다. 하지만 같은 달 일본과 한국인 관광객이 19% 늘어난 대만은 두둑해진 여행수지 흑자를 즐기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비율은 10월 들어 두 자릿수로 줄고 있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수출규제를 들고나왔다. 한국이 일본의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건 정치적 사안을 국가 간 교역의 영역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선 끝까지 냉정을 유지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게 싸움을 하면서도 자기 것을 지키는 영리한 태도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 반드시 육성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혼자 다 해야 한다는 갈라파고스적 논리로 귀결돼선 안 된다. 그동안에도 소부장은 항상 취약한 고리였지만 한국 반도체산업은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1965년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이후 한 번도 대일흑자를 못 냈지만 한국의 전체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세계 6위(작년 기준)이고 일본은 적자다. 우리는 국가 간 분업 구조를 매우 잘 이용해 왔던 나라다.
한일 간 정치 지형에서 반일(反日)의 경제학은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손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뒷감당은 국민과 기업 몫이다. 22일 오전까지만 해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반드시 종료해야 한다고 했던 여당은 그날 저녁 청와대가 ‘조건부 연장’을 발표하자 외교적 승리라며 바로 입장을 바꿨다.
미래의 어느 날 정치의 과잉이 빠져나간 한일 간 경제 현실에서 ‘일본보다 덜 손해를 본’ 우리의 승리는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다시 살아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본에서 반도체 장비를 들여와야 하고 거기서 만든 반도체를 일본에 팔아야 한다. 다시는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드는 것도 극일이지만 일본을 더 잘 이용하는 것도 극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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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06:51:00
돈벌어 세금 내 본적없는 데모꾼들은 그런 복잡한 나라 걱정 안한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남의 돈으로 무위도식하며 그렇게 청춘을 살았다.
2019-11-25 12:53:16
일본으로 수출이 줄어든 것은 순수하게 우리의 부담이고 일본으로 부터 수입이 줄어든 것은 우리나라 제품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고 유럽이나 미국 등 부담이 더 큰 나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그 또한 우리의 부담일 줄도 모르는 멍청한 넘들이 설쳐되니 그냥 눈감고 귀막고있자.
2019-11-25 09:15:14
정말 골때리는 '우리'죠, 금융 위기 후, 국제 기구들이 부정 자금들을 추적하고 각국 정상들이 약속해서 '도시바' 분식 회계, (지금은 '닛산' 분식 회계), 중공 대규모 분식 회계, 결국 삼성 분식 회계 문제로 발전해서 한국은 '일중 '샌드위치'란 얘기까지 나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