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지염으로 죽어가던 그녀는 아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감옥에 있었다. 교정당국이 외출을 허락해주지 않는다고 하자 그녀는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공연되는 희곡 ‘진지함의 중요성’을 쓴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그녀의 아들이었다.
와일드의 어머니 레이디 제인 ‘스페란자’ 와일드는 다재다능한 여성이었다. 시인, 번역가, 언어학자였으며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이자 여권 운동가였다. 아일랜드에서는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와일드는 트리니티대와 옥스퍼드대를 거치며 작가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터진 동성애 사건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결국 1895년 5월, 2년의 강제노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 이름 대신 C33이라 불렸다. C동 3층 3호실에 수감된 죄수.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 편이었다. 세상이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침을 뱉을 때도 그를 감싸면서 법정에서 당당하게 맞서라고 했다. 가문에 먹칠을 했어도 그의 편이었다. 와일드가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모은 ‘옥중기(De Profundis)’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묘사된 부분을 하나 꼽으라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대목이다. 한 단락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짧은 것은 슬픔과 회한, 상처와 고통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감정들의 과잉 때문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언어의 대가’인 그였지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비통한 마음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펜으로 쓸 수도 없고 종이에 기록할 수도 없고’ 치유될 수도 없는 감정이었다.
어머니가 죽은 이듬해인 1897년 5월에 형기를 마치고 나온 그는 3년 6개월 후에 마흔여섯의 나이로 비참하게 죽을 때까지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 산문문학의 최고봉이 된 ‘옥중기’는 그의 슬픔을 100년이 넘은 지금도 조용히 증언한다. 그것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