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교의 시간’ 번 韓日, 지혜 모아 진정한 해법 도출해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3일 00시 00분


한일 정부가 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6시간 앞두고 분쟁을 중지하는 일종의 휴전인 현상동결(standstill)에 합의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하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잠정 중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일은 수출규제와 관련한 과장급·국장급 대화를 진행하기로 했다. 일본은 “우리 입장은 변하지 않았지만 대화는 해가겠다”며 “한국 측이 적절하게 운용을 하면 (수출규제 조치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일 양국이 마지막 순간에 조건부 현상동결에 합의한 데는 무엇보다 미국의 거센 한일 압박이 주효했을 것이다. 미국은 진작 양국에 추가 보복을 중단하는 합의를 제안한 바 있지만 일본이 거부하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양국이 찾은 임시 동결 해법은 미국의 제안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 한일 간 발표 내용에선 뉘앙스 차이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가 더 크게 양보했든 양측 모두가 일방적 굴복으로는 보이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체면을 살리며 외교의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조치가 조건부 분쟁 중단인 만큼 양국이 갈등 해법을 찾기까지는 여전히 우여곡절이 적지 않을 것이다. 협상이 원만하지 않게 흐른다면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와 수출규제 강화 및 장기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공감대를 어렵사리 이뤄낸 만큼 우선 양측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작은 조치나 사소한 언사에도 조심하면서 외교적 협상력을 총동원해 타협 가능한 절충점을 도출해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앞으로 이뤄질 한일 간 수출규제 관련 협의만으로 한일 갈등이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근본적 갈등 해법은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한일 간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시한 이른바 ‘1+1+α(알파)’안, 즉 한국과 일본 기업, 양국 국민의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만드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만큼 이 협상안을 토대로 양국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논란이 낳은 논란과 후유증을 해소하는 데도 나서야 한다. 정부가 꺼낸 지소미아 종료 카드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 카드를 꺼낸 것 자체가 수많은 불필요한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한일관계를 넘어 한미동맹, 한미일 3각 협력체제까지 흔들리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깊은 의구심을 낳은 게 사실이다. 미국은 이번 지소미아 논란을 한미동맹에 대한 이탈 움직임으로까지 받아들일 기세였다. 안보를 협상 카드로 내세워 동맹의 불신을 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지소미아#한일 관계#수출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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