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 함남 신포시 오매리의 이른바 절골 유적에서 출토된 명문(銘文·새긴 글씨) 금동판에는 이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명문 가운데 ‘천손’이란 말은 중국의 천자(天子)나 일본의 천황(天皇)에 상응하는 개념. 그 이전까지 발해 문왕(文王)이 사용했던 ‘천손’이란 단어가 이웃나라를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 고구려 금동판의 발견으로 발해 ‘천손’의 원류가 고구려임이 확인됐다.
앞부분은 깨어져 없어지고 뒷부분만 남아 있는 이 금동판의 명문 중 현재 확인되는 글은 12행으로, 이 중 판독이 가능한 글자가 113자이고 떨어져 나갔거나 마모돼 식별이 어려운 글자는 26자이다.
특히 명문에는 탑을 건조한 내력과 함께 ‘○和三年 歲次 丙寅 二月二十六日’(○화 3년 세차 병인 2월 26일)이라는 작성 일자가 나와 있다. 여기서 ‘○和’라는 연호는 자획이 떨어져 나가 분명치 않으나, 북측은 이를 ‘태화(太和)’로 판독하고 고구려 양원왕(544년 또는 545년∼559년) 때인 546년 2월 26일 이 금동판을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학계는 또 이 금동판은 외척세력 간에 발생한 왕위계승 분쟁 와중에서 사망한 안원왕을 위한 추복(追福) 불탑의 탑지(塔誌)로 보고 있다. 이 불탑을 봉헌한 측은 옛 동옥저(東沃沮)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으나 왕위계승 분쟁에서 패배한 세력일 것이라는 게 학계의 추론이다.
▽도움말 주신 분=송기호(宋基豪·한국사) 서울대 교수, 이도학(李道學·한국사)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참고 북한자료=조선유적유물도감 제4권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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