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밭에서 땅갈이를 하고 있다. 뭔가를 심을 모양이다. 제초제를 뿌려 잡초를 말린 다음 땅을 갈아엎고 있다. 기계로 세 번을 왔다 갔다 하니 노란 흙이 드러나고 안방처럼 깨끗해졌다. 뒤이어 다른 기계가 빠르게 골을 파고 검정 비닐을 덮는다. 이제 비닐에 구멍을 뚫어 씨앗을 넣으면 된다. 그 옆에 있는 우리 포도밭과 참 대조적이다. 포도나무가 반이고 잡초가 반인 레돔의 밭. 사람들이 지나가다 무성한 잡초에 놀라서 발걸음을 멈춘다.
“한번 맞혀 봐.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 중에 가장 큰 것은 뭘까?”
밭을 저렇게 세 번이나 갈아엎어버리면 미생물과 지렁이가 다 죽을 텐데 어쩔 거냐고, 비닐은 찢어져 흙 속에서 몇백 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모두 내 탓처럼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스무고개를 낸다. “세상에서 제일 큰 존재?…코끼리?”라고 대답하니 식물이라고 한다. 유칼리나무?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나무 이름을 대니 그는 버섯이라고 답한다.
“한 개의 버섯은 100km까지 뿌리가 뻗어. 살아있는 존재로는 세상에서 가장 큰 개체지.”
한 개의 몸이 100km까지 간다니 충주 우리 양조장에서 동해 바닷가까지 뻗어간다는 뜻이다. 한쪽 발은 산골에, 다른 쪽 발은 바다에 담근 거대한 식물이 있다면 저 너머 소식을 이쪽으로 전해 줄 수도 있겠다. 이 시간 동쪽 지방 날씨는 버섯에게 물어보면 되겠군. 뭔가 공격이 들어올 것 같은 조짐에 내가 먼저 살짝 비웃자 그는 으쓱한다.
“버섯은 스스로 광합성 작용을 못하기 때문에 나무가 만든 당을 얻어먹어. 그 대신에 멀리까지 뿌리를 뻗어 미네랄과 물을 얻어 와서 나무한테 주지.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는 사이지. 밭에서 나는 이런 종류의 버섯은 나무와 나무를 연결시켜주는 메신저와 같아. 밭에 깔린 연결망이라고나 할까. 버섯이 있다는 건 땅속의 미생물과 풀과 나무들이 서로 잘 연결돼 소통을 하고 있다는 뜻이야.”
“아, 알겠다. 하늘에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돼 세계가 연결되는 것처럼 땅에는 버섯이라는 그물이 와이파이처럼 깔려 있다는 거네. 그러니까 나무와 풀과 미생물들이 버섯이라는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돼 뭔가를 교환하고 대화하고 그런다는 거잖아.”
나의 비유가 너무나 총명했던지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레돔은 한국 농토에서 겪는 이러저러한 것들에 대해 질문이 많다. 그러면 나는 그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고 대답해야 하는 땅나라 국무장관이 된다. ‘왜 겨울 동안 땅을 벌거숭이로 비워두지?’ ‘비닐을 씌워야만 한다면 좀 더 두꺼운 것으로 해서 몇 년이라도 재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밭은 안방처럼 깨끗이 잡초를 없애면서 밭 주변은 농약 통이며 비닐이며 플라스틱들을 잔뜩 버려 놓는 건 뭐지?’ 등등. 나는 화만 내고 시원찮은 대답을 내놓는 무능력한 장관이다.
“땅에 제일 치명적인 것은 뜨거운 태양이야. 땅도 인간처럼 시원하고 쾌적한 걸 좋아하는 살아서 숨쉬는 존재라고. 저렇게 깨끗하게 갈아엎어서 잡풀이 하나도 없으면 지렁인 뭘 먹고 미생물들은 어디서 살지? 버섯은 꿈도 꿀 수 없어. 잡초가 있어야 그 그늘에서 버섯도 자라고 지렁이도 먹고살면서 퇴비를 만들잖아. 인간이 먹을 열매만 키울 게 아니라 땅도 함께 키우는 것이 농부가 할 일이라고. 정말이지 이미 너무 늦었어!”
결국 그는 버럭 화를 내고 만다. 그러면 나도 화를 내고 우리는 남의 밭에 씨 뿌리는 것을 보면서 싸우게 된다. 허리가 휜 늙은 농부님들께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여름이 깊어가고 풀과의 전쟁은 더욱 극성일 것이다. 낫과 호미, 예초기, 제초제, 온갖 무기가 다 나오겠지만 풀을 이길 수는 없다. 어떻게 해야 사람과 땅이 다 잘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 땅나라 국무장관의 시름이 깊어간다. 이웃과 우리 사이에 이심전심 와이파이 버섯이 있어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밭에 잡풀 많다고 너무 나무라진 마세요. 게으름뱅이라 야단치지 마세요. 잡초 씨앗 날아와 온 동네 밭 다 버린다고 욕하지는 마세요. 우리 밭에서 간 건 아닐 거예요.”
신이현 작가
※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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