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미국 백악관에 깜짝 초청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하는 사진 한 장이 공개되자 국내 주요 기업들은 표정 관리 하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백악관은 31억 달러(약 3조5650억 원)를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를 지은 신 회장을 대통령 집무실로 초청해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할 기회를 제공했다. 아직 국내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신 회장이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래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한국의 첫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됐다는 점에 내심 부러움을 내비치는 한국 기업이 적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 방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국내 주요 기업들은 긴장감과 기대감 속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준비해왔다. 혹시라도 대미 투자를 압박하는 강한 멘트가 나오진 않을지,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에 동참할 것을 주문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우려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에 걸쳐 국내 기업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기업들은 사뭇 놀라는 분위기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신 회장을 향해 다시 한 번 루이지애나 투자에 감사하며 “정말 많은 훌륭한 일을 했다”고 노골적으로 치켜세운 것이 재계에선 다시 한 번 화제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오늘 간담회의 주인공은 사실상 신동빈 회장 아니었느냐”라며 “3조 원 쓰고도 저렇게 수차례 감사 인사를 받으니 투자할 맛 나겠다”고 했다. 신 회장은 이날 추가 대미 투자도 검토 중이라고 얘기했다. 일각에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0조 원 넘게 국내에 투자하기로 약속하고도 ‘경제는 경제, 재판은 재판’이란 소리를 듣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 아니냐는 푸념도 나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인들의 미국 투자 덕에 미국 일자리가 늘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쌓은 무역장벽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미국 내 공장을 지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미국 정부가 적어도 미국에 진출해 사업하는 기업들에 대해선 오로지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는 점도 잘 봐야 한다.
기업에 투자를 촉구하는 방법으로 무조건 팔을 비틀 수도 있지만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을 시행하면서 장기간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도 있다. 정책으로 확신을 주면 투자와 고용은 자연스럽게 확대되는 게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 아니겠는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트럼프이지만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일관성이 있다.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 덕에 실업률이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고 자부하는 그는 “지금이 투자하기 최적기”라며 우리 기업들에 노골적으로 윙크를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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