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에서 원균의 조선 수군은 전멸당했다. 오늘날까지 원균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 이 전투를 분석하면 원균의 전술적 잘못이 없지 않다. 아니 무능에 가까울 정도로 무모한 지휘를 했고, 왜군의 페이스와 전술에 완전히 휘말려 그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그런데 이 패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더 있다. 첫째는 당시의 아마추어 전술가들, 여론에 편승한 정치인, 관료들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육군은 왜군이 강하고 수군은 우리가 강하다”라는 문외한의 이분법에서 시작했다. 그러므로 수군이 나가서 부산포를 함락시키면 전쟁은 끝난다고 누군가가 선동을 시작했다.
이순신과 그의 함대는 꿈쩍하지 않았다. 전술의 첫째 원칙은 내가 유리한 곳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이겼다고, 저곳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다. 이순신은 이 원칙에 충실했고, 부산항 공격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 수군의 전설을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건만 선동가들은 “승리할 수 있고 당장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선조도 동조하면서 이순신은 해임되고, 비극은 시작됐다. 원균은 전사했지만, 입으로 싸우던 사람들은 반성문조차 남기지 않았다.
역사는 무섭게 반복된다. 단순하고 뻔한 잘못일수록 더 무섭게 반복된다. 40년 후 남한산성. 성을 포위한 청군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조선은 성이 함락되거나 항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자 몇몇 관료는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사람이 최명길이니 그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최명길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걸까? 청과 화친을 주장하고, 군사행동을 저지하고, 적의 전력을 과장해서 군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죄목이었다. 즉, 더 단결하고 더 강한 정신력으로 싸웠으면 청군을 격파할 수 있었는데, 최명길이 강화를 주장해서 망쳤다는 것이다. 역사는 또 반복된다. 나는 덕분에 역사학자라는 직업으로 먹고살 수 있다고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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