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은 대일 경제전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4일 14시 00분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있었던 청와대 수보회의에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단숨에 일본 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다섯 문단 중 한 문단 전체가 남북 경협 이야기였다.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한 대책으로 남북 경협을 들고 나온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은 경협을 통해 북한 주민들을 우리 경제권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수요 창출을 통해 거대한 내수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또한 최근 북한의 잇단 단거리 미사일 등 발사로 다소 소원해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협력의 메시지를 북한 측에 보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는, 일본 이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주지시킴으로써 향후 외교 국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요컨대 정치학자 하비브(Habeeb)가 제시한 협상전략의 지침대로, 우리 정부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대안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장기적으로 끌어안아야 할 북한과의 연합 형성이라는 전술을 보여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적의 시각에서 남북경협이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이 취한 조치들의 골자는 한국 기업들이 에칭가스 등의 필수원자재를 수입할 때 페널티를 주겠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 대한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경제를 압박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통령이 근거로 든 것은 “일본경제가 우리 경제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경제 규모와 내수시장 뿐”이라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8.5/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8.5/뉴스1

대통령의 발언대로 남북 경협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북한 인구 2300만 명이 우리 경제권으로 편입되어 수요를 크게 창출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북 간의 큰 경제적 격차가 문제이다.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이라 했을 때, 북한 주민들의 국민소득은 2.5에 불과한 상황이다. 따라서 수요가 대폭 증가하더라도 소비력은 확보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의 발언이 실현되려면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물건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소득부터 증대되어야 한다. 북한 스스로의 생산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열악한 교통수단과 에너지 등 기초적인 인프라에부터 투자를 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남한이 북한에 의해 얻는 이득보다는 투자 비용이 더 클 것이다.

남북 경제교류는 절대 한 쪽만 성급하게 생각해 실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깊은 정책적 고민과 북한 정권과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남북 경협과 경제통합을 위해서는 북한 경제가 먼저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남한이 너무 빠르게 개입할 경우, 북한의 경제 발전을 오히려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경협 초반부에 남한이 북한의 생산설비에 대규모 투자를 할 경우, 임금 상승으로 이어져 가격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통령이 말한 ‘평화경제’와 ‘내수규모의 확대’는 북한 경제가 스스로 상당히 성장한 다음에야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남한 기업들이 북한 시장을 개척해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데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북 경협은 북한의 체제이행 과정과 톱니바퀴처럼 서로 잘 맞물려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경제협력에 있어서는 남한 뿐 아니라 북한 정권의 의지도 대단히 중요하다. 경협에 앞서 북한은 집단농장을 가족농으로 전환하고 잉여물의 임의처분을 허용해 인센티브를 확보하는 한편, 사유화와 거래·투자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확대하는 ‘체제이행의 최소 조건’을 달성해야 한다. 또한 우리 정부는 경제적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필수적인 환경인 평화의 유지를 북측에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 군사적 대립이 치닫는 상황에서는 국내정치적 부담감이 커져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할뿐더러 남한의 경제주체들이 소비·투자의 불안정성을 느낄 것이므로 협력의 길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상의 기본적인 조치들이 없는 상태에서의 남북 경협은, 1980~1990년대 북한의 합영법과 경제특구처럼 결실 없이 자원만 낭비하고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도 끊임없이 남북협력을 하려는 노력을 하되, 북한 경제의 변화를 여실히 관찰하여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북한이 체제 이행을 통해 자생적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에 더해 현재의 위기상황은 수요가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 원자재 수급과 관련해 기업의 생산력 자체가 약화되는 공급측 요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바로 남북경협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이번 무역분쟁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일본의 기술수준은 한국보다 분명히 높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한일 간의 기술수준을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나노·소재 분야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술수준에서 일본은 한국을 상당한 수준으로 앞서 있다. 일본·미국의 연구원들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 중심 산업기술력은 높으나, 기초연구수준이 낮아 기술격차가 나타나는 것으로 지적된다.

즉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결국 우선 기술 발전을 통한 질적인 향상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소홀했던 기초적 자연과학부문과 그 연구원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 원천적인 연구수준 강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규모를 증대시키는 것은 분명 유익한 일이지만, 질적 발전 없는 양적 팽창만으로는 일본을 추격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내외적으로 한국 정부의 능력에 대한 나쁜 시그널로 작용할 수 있다.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면 주요국들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까지도 남한이 남북협력과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이 경우 통일을 원하는 국민들의 ‘구심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통일에 부정적인 주요국들의 ‘원심력’을 강화시켜 한반도에서 우리의 주도성을 침식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는 현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특히 대북정책의 경우 무엇보다도 현실에 근거를 내린 정책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통일의 동력은 확보되어야 하고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북 경협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남북 경협과 통일의 기회는 거대하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그만큼 비용도 클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남북 경협을 시작한다면,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딸을 위해서 한다고 보는 것이 정직한 표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비되지 않은 남북 경협은 단기적으로는 해결책이기는커녕 오히려 고통일 수 있다. 현실은 현실대로 파악해야 한다. “사회과학은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다.” 무엇보다도 일본과의 경쟁도, 남북 경협도 모두 “단숨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한국 정부는 산적한 과제들에 대해서 철저히 장기적인 구도로 조망해야 한다. 엉킨 실타래를 단칼에 잘라내고자 하는 고대 알렉산더식 지혜는, 정치·경제적으로 복잡한 현재에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손세호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16학번 ssp04309@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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