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요즘 잘 안되는 진짜 이유[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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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유권자 입장에서 생각해봤나
甲 아니라 乙 아는 인물 총선 공천해야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자유한국당이 조국 사태 이후 지지율이 반짝 상승하다가 다시 고전하는 이유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광화문 집회’로 상징되는 지지층 결속이라는 호재에도 워낙 다양한 악재들이 터지다 보니 한국당도 정신 못 차릴 지경이라고 한다. 조국 사태에 기여한 의원들 표창장 논란부터 패스트트랙 ‘투쟁’ 참여 의원에 대한 공천 가산점 문제, 문재인 대통령 비하 애니메이션에 이어 박찬주 전 대장 영입 논란이 불거졌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며 영입했던 이자스민 전 의원은 정의당에 뺏겼다.

이를 놓고 황교안 대표의 일방통행식 당 운영이 문제라는 사람도 있고, 나경원 원내대표의 원내 전략이 시원찮다는 말도 있다. 한국당의 고질적인 웰빙병이 도졌다는 한숨도 들린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한국당의 악재 시리즈 전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거론되는 이유들도 너무 관습적이다. 오히려 대국민 소통 부족이 진짜 이유 아니냐는 말을 필자는 당 안팎에서 자주 접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유권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시뮬레이션도 해보지 않고 내키는 대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표창장부터 영입 논란까지 지지층 의중도 알아보지 않고 저지르다가 일이 터졌다.

사실 정치는 팔 할이 커뮤니케이션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별명이 왜 ‘위대한 소통자(great communicator)’일까. 할리우드 배우 출신인 그가 대단한 학벌이나 정치적 배경, 카리스마보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걸 미리 파악하는 데서 리더십을 길어 올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눈치’가 남달랐다는 애기다.

그렇다면 한국당 의원들은 아예 소통에 자질이 없나. 그렇지 않다. 한국당 의원들을 사석에서 만나 보면 자기들끼리는 잘 통한다. 남성 의원들끼리는 ‘형’ ‘동생’ 하면서 수시로 연대를 과시하고 연락을 주고받는다. 밥자리에서 누구 이야기가 나오면 휴대전화를 꺼내 “야, 어디냐? 얼굴 좀 보자”고 하고, 실제로 달려와 서로 대화하고 고민을 털어놓는다. 남녀 의원들끼리는 ‘누님’ ‘오라버니’ 하는 경우도 봤다.

이렇게 서로 이야기도 잘하고 사회성도 좋아 보이는데 왜 대국민 소통은 잘 안되는 걸까. 한국당 의원들의 이전 경력에 힌트가 있다. 판사 검사 장차관 장성…. 대부분 ‘갑’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다. 아랫사람과 상대방에게 지시하는 게 본업인 직군이다. 평생 ‘을’의 위치에 있어 볼 일이 없다.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나오는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몇 년 했다고 그 체질이 쉽게 바뀔 리가 없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는 젊은 시절부터 바닥 민심과의 소통을 몸으로 익힌 사람이 많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시민사회운동 모두 현장 반응에 얼마나 기민하게 반응하느냐가 그 분야에서 생존을 좌우한다. 같은 법조인이더라도 민주당엔 판검사 출신만큼이나 일선 변호사 활동을 한 사람이 많다. 법조인으로서 능력을 떠나 민심에 대한 반응 속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다들 ‘눈칫밥’을 먹어본 사람들이다.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길러지거나 학원에서 단기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데 한국당의 고민이 있다. 결국 지도부 몇 사람의 문제라기보단 사람 전체의 문제다. 자연스레 내년 총선 공천 문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새 사람을, 순발력 있게 바닥 민심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충원해서 당의 체질을 조금이나마 바꾸느냐에 내년 4월 15일 이후 한국당의 정치적 미래까지 달려 있는 것이다. 총선까지 앞으로 162일. 한국당은 과연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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