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2200만 원을 받으며 중소기업에 다니는 정모 씨(35)는 9월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내년 3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시행을 앞둔 주 52시간 근무를 회사가 시범 실시하면서 시간외수당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딸 둘인 정 씨는 편의점에서 주말 7시간, 수·목요일은 오후 8시부터 4시간 일하며 월 70여만 원을 번다. 정 씨는 “직장에서 버는 돈이 줄었기 때문에 가족을 부양하려면 ‘알바’를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씨처럼 2015년 8월~올 8월, 2곳 이상의 일자리를 가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가 10만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최도자 의원이 17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복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중복가입자는 2015년 8월 15만3501명에서 2019년 25만5355명으로 늘었다.
특히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된 2017년 이후 증가폭은 더 커졌다. 매년 8월 기준으로2017년은 2016년보다 1만8569명(증가율 11.0%) 증가했지만 지난해는 2017년에 비해 2만1376명(11.2%) 증가했고 올해는 4만3613명(20.6%)이나 늘었다. 이른바 ‘투잡’ ‘쓰리잡’을 뛰며 건강보험료를 여러 직장에서 동시에 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대구의 한 전단지 배달업체 계약직인 우모 씨(28)는 풀타임으로 일하다 지난해부터 평일 오후 3~7시에 일하는 파트타임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평일 오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병행한다. 우 씨는 “급한 대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사장이 하루 4시간만 일해라고 해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우 씨처럼 한 사업장에서 1개월 이상, 매월 60시간 이상 일한 근로자에 대해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사업주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중복가입자는 대부분 300인 미만 중소기업을 다니거나 자영업자에게 고용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최저임금이나 주 52시간 근무의 영향을 직접 받는 직종의 종사자가 많다는 얘기다. 대기업은 보통 근로계약서나 사규를 통해 영리활동을 위한 겸직은 금지한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그리고 경기불황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저임금이 인상 된 데다 경기마저 풀리지 않아 풀타임에서 파트타임으로 바뀌어 근로시간이 줄어들자 남는 시간을 다른 소득활동으로 메우는 것”이라며 “특히 30, 40대가 주로 일하는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투잡을 지닌 사람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당 근무시간이 줄어듦으로 해서 앞으로 여러 개 직장을 동시에 다니는 일이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잡 현상은 주 52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을 때 예상됐던 일”이라며 “근로시간이 정해지고 수입은 줄어들게 되니 앞으로는 큰 회사도 근로자의 투잡을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 의원은 “여러 일자리를 가져야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은 서민의 삶이 그만큼 팍팍해졌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투잡, 쓰리잡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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