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심재철 자유한국당 신임 원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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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9일 1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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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출마한 심재철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9년도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출 의원총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2019.12.9/뉴스1 © News1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 출마한 심재철 의원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9년도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선출 의원총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2019.12.9/뉴스1 © News1
20대 국회 후반기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심재철 의원(5선·경기 안양시동안구을)은 5선 고지에 오른 비박(非박근혜)계 의원이다.

광주광역시에서 1958년 태어난 심 신임원내대표는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시절 당시 ‘서울의 봄’ 정국에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대표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장애를 얻는 등 온갖 고난을 거치며 국회부의장까지 올랐다. 이에 심 의원은 ‘오뚝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심 원내대표는 10만여명의 시민이 서울역에 모여 ‘군부타도’를 외칠 때 시위 후퇴를 결정한, 이른바 ‘서울역 회군’ 장본인으로도 유명하다. 심 원내대표는 학생 운동을 하면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5년의 징역형을 받고 1983년 12월 특별복권됐다.

1985년부터 동대문여자중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지내다 MBC에 입사해 보도국 기자로 활동했다. 1988년엔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어 초대 전임자가 됐다.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 중 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언론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1993년 다시 투옥된 그는 방송으로 복귀하는 날 트럭과 정면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이때 사고로 심 의원은 3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심 의원은 15대 국회 원내입성에 실패했지만 1996년 신한국당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경기도 안양 동안에서 당선된 이후 내리 5선에 성공했다. 그는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심 의원은 2009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야당의 반대 속에 4대강 사업 예산을 처리하기도 했다.

친이계 인사인 심 의원은 계파 모임인 ‘함께 내일로’의 초대 대표를 지냈다. 이 외에도 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 한국-영국 의원친선협회 회장을 맡았다. 심 의원은 세월호 참사 직후 당내 ‘세월호사고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Δ1958년(61. 광주광역시) Δ서울대 사범대 영어교육학과,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박사 과정 Δ서울대 총학생회장 Δ동대문여자중학교 영어교사 ΔMBC 보도국 기자 Δ16∼20대 국회의원 Δ한나라당 부대변인, 정책위원회 의장, 전략기획위원장, 홍보기획본부장, 원내수석부대표 Δ새누리당 최고위원국회 윤리특별위 위원장, 예결특위 위원장 Δ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Δ국회 가톨릭신도의원회 회장 Δ국회 세월호침몰사고의진상규명을위한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 Δ국회 한국-영국 의원친선협회 회장 Δ국회 부의장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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