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흔들지마라” 선그은 문재인 대통령…허언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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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29일 13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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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3.25/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19.3.25/뉴스1
“KT와 포스코, 흔들지 마라.”

현 정권 출범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힌 말이 ‘현실’이 됐다. 12년 만에 ‘정통 KT맨’이 KT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출되면서다. 정권 출범 초기 “정부 지분도 없는 민간기업을 정권이 흔들어선 안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이 ‘허언’이 아님이 입증된 셈이다. ‘이변 아닌 이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KT는 2002년 민영화가 됐지만 정권의 ‘전리품’으로 취급되며 이명박 정부 이후 10년 넘게 낙하산 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KT 대표이사 직급이 ‘회장직’으로 격상돼 ‘장관급’의 권력을 누린 것도 이명박 정부 때부터다.

◇문대통령, 수보회의서 “KT와 포스코 흔들지 마라” 직접 당부

KT 이사회는 지난 27일 차기 CEO 최종후보로 구현모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구 사장은 1987년 KT에 입사해 평생을 몸담은 ‘정통 KT맨’으로 비서실, 경영기획실 등 요직을 두루 거쳐 경영수완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 공식 취임을 감안하면 2008년 남중수 사장 퇴임 이후 12년 만의 내부승진이다.

KT가 내부승진으로 CEO후보를 확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권이 의식적으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 한몫 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이석채 전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지냈고 이명박 대통령 취임후 ‘친이계 인사’로 분류되며 KT에 입성했다. 황창규 회장은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신화를 이끈 경영인이면서 동시에 ‘친박인사’로 회자됐다. 두 사람에 대한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이에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황창규 회장에 대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정권 차원의 퇴진 압력이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많았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KT와 포스코 등 사기업 CEO에 대해 정권 차원의 압력이 있어선 안된다”면서 “흔들지마라”고 언급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 연임에 성공한 황창규 회장이 정치권과 각계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았고, 포스코 회장은 자진해 자리에서 내려오자 대통령은 수보회의에서 “KT나 포스코 같은 기업에 정부의 지분이 있느냐”고 묻고 정부 지분이 없다는 답에 “정부 지분도 없는 민간기업을 정권이 흔들어선 안된다”는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KT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정치권이나 정권에서 KT 회장에 대한 여러가지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수보회의에서 ‘흔들지 말라’는 언급을 한 이후 적어도 ‘조직적’인 압력은 사라졌다”고 돌아봤다. 과거처럼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KT 회장 후보에 대한 인사검증에 나서는 등 노골적인 인사 개입은 없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 정부 들어 1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수장직을 지낸 유영민 전 장관도 올들어 통신업계 최대 현안중 하나로 KT 차기 회장 구도에 대한 설왕설래가 잦아지자 현직 시절에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며 “현 정부에서는 청와대서 KT 회장 인사 검증 일을 할 사람이 없다. 이 정부는 KT와 포스코를 건드릴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전 정권과) 똑같아진다”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지난 11월부터 KT 회장 인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현 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핵심인사들이 유력후보로 거론되자 “이 정권도 다를 게 없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 고개를 들었지만 결국 ‘외압’이 아닌 ‘황 회장의 복심’이 더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구현모 사장은 황창규 회장 취임 직후 비서실장을 지내 조직내에서 황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차기 CEO로 낙점된 구현모 KT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 뉴스1
차기 CEO로 낙점된 구현모 KT 커스터머&미디어부문장(사장)© 뉴스1
◇이사회 추천권 배제…‘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투명성 높여

KT 이사회도 CEO 선임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KT CEO로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경영 역량은 당연하지만 그간 CEO 선임 때마다 반복됐던 낙하산 논란의 고리를 끊어내고 기업의 신뢰도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한 것이다.

실제 이석채 전 회장과 황창규 현 회장은 임기말에 모두 검찰 수사를 받았다. 낙하산 논란을 안고 CEO 자리에 올라 취임 초기엔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지만 정권의 향배에 따라 KT CEO도 함께 공격을 받았다. KT 회장직을 두고 ‘독이 든 성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같은 CEO 흔들기는 급변하는 정보통신기술(ICT) 흐름에 맞는 전략 수립에 매진해야 할 CEO와 임원들이 ‘CEO 보호’에 매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만큼 KT의 경쟁력은 후퇴했다.

이에 이사회는 CEO 선임 절차를 진행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낙하산 인사나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하자는 대원칙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 후보 추천 권한도 전격 배제했다.

이석채 전 회장과 황창규 현 회장은 KT CEO 선발 과정에서 초기 후보공모에 응하지 않다가 막판 최종 후보 선정 과정에서 ‘이사회 추천’으로 전격 결정된 이력이 있다. 이번 이사회는 이같은 가능성을 CEO 선임 절차에서 원천봉쇄한 것이다.

회장후보 모집과 1차 심사를 진행한 ‘지배구조위원회’를 이끌었던 김대유 KT 사외이사는 “올해 4월 이사회에서 KT 회장 선임 절차를 처음 의결할 때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대 가치로 세우자는데 모든 이사들이 동의했다”면서 “이에 따라 모든 후보는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서류접수부터 시작해 단계별 심사를 거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CEO 공모과정에서는 친정부 성향으로 꼽히는 ‘전직 고위관료’들도 여럿 지원했다. 하지만 IT 경력이 전무했던 일부 후보는 1차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고, IT전문가라 칭하던 인물도 ‘KT 경영 전문성’ 측면에서 낮은 점수를 받으며 KT맨에게 밀렸다.

KT 이사회 관계자는 “회장 후보 공모 과정에서 친정부 인사나 전정권 고위 관료들도 응모했지만 모두 정당한 평가를 거쳤으며 결코 외부 압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KT 고위 관계자는 “국내 10대 대기업 중 이정도로 투명한 인선을 거치는 기업이 없고 전례 또한 없어 KT가 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투명한 인선을 거쳤다는 값진 결과를 안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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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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