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당 총선 참패 없었다면 황교안 대세론이나 중진들 다툼에
2022년 대선 必敗 명약관화했을 것
YS 계열과 민주화투쟁 출신 많음에도 3당 합당 유산으로 ‘독재후예’ 콤플렉스
광주항쟁과 민주화 적극 껴안아 탈각해야
1987년 12월 16일 밤 많은 이들이 절망하고 분노했다. ‘6월 민주화 항쟁’ 반년 뒤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끝에 얻어낸 직선제인데, 군부독재 2인자에게 828만 표나 몰렸다니….
다행히 이듬해 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뤘지만 또 한 번의 절망이 1990년 1월 찾아왔다. 제도권 민주화 세력의 양대 기둥 중 하나였던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공 세력인 민정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과 합친 것이다. 당시 느낀 절망과 역사의 진보에 대한 회의감은 컸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런 일련의 흐름이 어찌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새옹지마가 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는 직선제를 쟁취하고 민주화의 길을 열었지만 군부가 언제든 다시 총칼을 들이밀 수 있는 취약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은 군부독재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는 과도기가 됐고, 3당 합당을 통한 민간정부 수립으로 이 땅에서 군부 쿠데타의 싹이 제거됐다.
광주민중항쟁을 짓밟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을 비롯한 당시 하나회 중심 군부의 속성을 감안하면 그런 단계적 전환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가 거쳐 온 역사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흘리는 민주화 과정을 겪었을 수도 있다.
이번 총선도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의 새옹지마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이겼다면 황교안 대세론이 커졌을 거다. 보수진영은 ‘군대도 안갔다 오고, 평생 공안검사에 탄핵 정권에서 법무장관과 총리를 지낸 후보로는 위태롭다’고 속으로는 걱정하면서도 대세론에 밀려 대선 필패)必敗)의 절벽으로 행진했을 것이다.
근소한 차이로 졌을 경우에도 구시대 중진들이 당권·대권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며 대선 필패의 코스로 갔을 것이다.
벌써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한 일부 중진이 다음 대권을 입에 올리는데. 그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와 국민이 생각하는 그들의 위치가 너무도 차이가 커서 어이가 없을 정도다. 필자가 그동안 만나본 그런 정치인들의 특징은 아무리 똑똑하고 유능해도, 자신을 객관화시켜서 보는 능력이 일반인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돌이켜 보면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서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드는데도 물결에 떠밀리듯 일이 진행되면 반드시 민심의 심판을 받게 되는 걸 현대사에서 수없이 목도해왔다. 그래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하는 요행은 이뤄지는 법이 없다.
황교안 대표가 선출됐을 때, 그리고 광주항쟁을 폭동이라 부르고, 상대 진영을 ‘김정은에 게 나라를 헌납하려는 세력’ 식으로 인식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인사들이 활개 칠 때마다 저래선 수구 이미지를 벗기 어려울 텐데라는 걱정이 나왔는데 역시 기우가 아니었다.
사실 극좌와 극우는 서로의 거울이다. 광화문에서 김정은을 찬양하는 극좌파나 조국 세력, 그리고 반대편의 극우 인사들 모두 일반 국민들의 눈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지를 알고 싶으면 상대방을 보면 된다.
통합당의 고질적 이미지는 30년전 3당 합당이 남긴 고약한 유산이다. 평생 민주주의나 인권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박근혜, 김기춘 같은 인물들이 21세기에 재등장한 것도 3당 합당 때 뒤섞인 독재시대 DNA의 찌꺼기가 발효된 것이다.
그런 점을 노려 좌파진영은 자꾸 ‘민주화세력 vs 산업화세력’의 이분법을 내걸고 통합당은 맥없이 그 프레임에 걸려든다.
사실 통합당에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다수 있고, 유신과 5공 출신들은 진작 정리됐는데도 통합당의 의식구조에는 ‘우리는 민주화의 반대편’이라는 콤플렉스가 똬리를 틀고 있다.
단적인 예가 통합당이 광주항쟁에 대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것이다. 통합당은 왜 전두환의 변호인처럼 비치길 자원하는가. 전두환 노태우를 단죄해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바로 김영삼 정권 때다.
17일 후면 광주항쟁 40주년이다. 한국 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인데 발포명령, 헬기사격 등 아직도 진실 규명이 미진한 대목이 남아있다. 통합당은 더 이상 진실 규명에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 광주항쟁을 비롯해 민주화를 폄훼하는 인사가 당내에 남아있다면 단호히 축출해야 한다. 민주화 투쟁은 여당, 좌파만의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위대한 유산이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통합당이 지향해야 할 좌표가 선명히 드러났다. 좌파 20년 집권을 막으려면 보수 텃밭이 아닌 중도층과 젊은 세대를 준거집단으로 삼아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민주당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이념편향적인 운동권 출신들의 한계로 시야가 흐려져 진보와 ‘포퓰리즘·노조이기주의·불공정’의 차이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패착을 둬왔고 중원(中原)은 아직 열려 있다.
기적같이 이뤄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건전한 중산층이 주도했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여전히 좌우 어느 쪽으로 쏠려 있지 않다. 통합당이 중도층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3당 합당의 잔재를 털어내고 다시 태어난다면 총선 참패가 새옹지마가 됐다고 회고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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