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텔레비전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이 이제 별로 어렵지 않다. 시청률을 보면 한국인들은 한국에 처음 오는 관광객이나 부부생활을 오래한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의 한국 생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만한 쟁점을 외국인이 어떻게 보는지도 텔레비전에서 쉽게 파악할 수가 있다. 뉴미디어인 유튜브에서도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담은 재미있는 영상들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칼럼도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물론 내게는 재미있는 콘셉트를 잡아줄 PD나 유머 넘치는 작가도 없지만 나는 매달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하고 글을 쓴다. 손예진 씨가 나온 영화 ‘클래식’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어머니가 주고받는 시시한 연애편지를 진부하지만 클래식으로 생각하겠다고 결심했다. 그처럼 독자 여러분도 내 단순한 글을 인기 예능과 비교하지 말고 그저 클래식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방송 출연 기회를 여러 번 얻었다. 출연할 때마다 긴장했지만 매우 재미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못한 배우 같은 면이 일부 있는 것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다른 외국인이 출연하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거나 내가 했더라면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주 가끔 들 때도 있었다. 특히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방송인 샘 해밍턴 씨가 출연했던 ‘진짜 사나이’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물론 끝난 지 한참 된 프로그램에 나가보고 싶다고 얘기해도 소용은 없겠지만….
그 대신 ‘진짜 사나이를 리메이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군인 콘셉트는 벌써 지겹도록 했으니 이번에는 공무원 생활에 초점을 맞춰 가제를 ‘진짜 사무관’이라고 한다면 주연은 바로 나다.
물론 행정적인 일상업무는 그렇게 신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책의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회의 내용을 방송하면 시청률은 백분율로 계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저조할 것이다. 그래도 공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래 나의 주 업무는 서울시 서울글로벌센터 등 외국인 지원시설 10곳의 운영을 총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주부터 2주일 동안 기존 업무의 지휘봉을 밑에 있는 주임에게 전달하고 파견을 나갔다. 새로운 근무지는 바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서울시 생활치료센터. 다른 공무원 6명과 의료지원단 및 간병인과 같이 입소자들이 빨리 완쾌될 수 있도록 돌보고 있다.
주간반일 때는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밤새 고생한 야간반 직원으로부터 인수인계를 받는다. 전날 저녁부터 입소자가 요청했던 생수, 휴지 등 생활용품을 챙기고 몇 호실로 배달할지 나눈다. 이어 택배 상자들을 하나씩 뜯어 반입금지 물품이 없는지 확인하고 주인에게 전달할 준비를 한다. 그 와중에 점심 먹을 도시락이 도착한다. 각각의 요리를 1인당 하나씩 챙기고 배부하기 전 방호복 4종 세트를 입는다. 라텍스 장갑, 일회용 가운, 마스크, 안전 보호 안경을 다 착용한다. 이어 도시락, 택배물품, 생활용품, 의료진에게서 받은 약을 나누러 시설에 들어간다. 감염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지정된 동선으로만 이동하고 물품은 방 밖에 놓고 온다.
이렇게 배부를 끝낸 뒤 다른 경로를 따라 바로 폐기장으로 이동해서 방호복을 조심스럽게 벗고 소독한다. 조금 쉬었다가 영화에서만 봤던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시설로 다시 들어가 입소자의 폐기물을 처리한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4종 세트를 입고 저녁식사 등을 나눈다. 이 밖에 이탈 시도자가 없도록 계속 폐쇄회로TV를 모니터링한다. 입소자들은 지정된 시간에 옥상에서 산책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방에 머문다. 텅텅 빈 복도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리얼리티쇼 같다. 이렇게 13시간의 근무시간이 지나가면 야간반이 출근한다. 3조 2교대로 근무하니 내가 오늘 주간반이었다면 내일은 야간 근무를 하게 된다.
나는 임기제 공무원이라 가끔 다른 동기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비상근무로 내 공무원 경험 목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한 느낌이다. 시청 본청에서 숙직해 본 경험, 불만이 많은 민원인에게 욕설을 들어본 경험, 시의회에서 발언해 본 경험, 서울시장과 대화해 본 경험, 그리고 이번 비상근무 경험까지 더해졌다. 나는 ‘진짜 사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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