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보다 연봉 1400만원 더 받는데… 파업 페달만 밟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車산업 위기, 노사관계부터 풀자]<上>노사갈등-경쟁력 약화 악순환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현대차 노조)는 5일 제14차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노조는 올해 기본급 7.2%(15만2050원) 인상,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승진 거부권,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했고 사측에서는 임금 체계 개편 논의, 임금피크제 확대 등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맞섰다.

협상은 본격적인 논의를 벌이기도 전에 깨졌다. 20일 현대중공업 노조와의 연대 투쟁, 22일 금속노조 총파업 등을 염두에 둔 현대차 노조로선 합법적 파업을 위해 최소 열흘의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교섭 결렬은 예고된 순서였다는 뜻이다. 현대차 노조는 5일 중앙노동위원회 쟁의 조정 신청, 13일 파업 찬반 투표 등 일사천리로 절차를 밟았다. 노조는 중노위의 ‘조정 중지’ 결정이 나기 전날인 14일 노보를 통해 상세 파업 계획(19∼22일)을 조합원들에게 알렸다.

5년째 반복되는 모습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3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이뤄 낸 2009∼2011년을 제외하면 1989년 총파업 이후부터 현대차에서는 거의 매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고공비행’을 지속할 때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이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 노사가 반목을 지속한다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막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한국 자동차산업의 위기 징후들

18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완성차 5개 사의 평균 임금은 1인당 9313만 원이다. 일본 도요타와 독일 폴크스바겐의 평균 임금은 각각 852만 엔과 6만2473유로. 지난해 평균 환율을 적용하면 각각 7961만 원, 7841만 원이다. 엔화 및 유로화 약세의 영향을 감안하더라도 국내 자동차업계 임금 수준은 지나치게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국내 업체들의 지난해 총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12.0%로 도요타(2014년 기준 7.8%), 폴크스바겐(9.7%)을 훨씬 웃돈다.

인건비 증가는 투자 여력 감소를 뜻한다.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총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각각 2.4%, 3.1%에 그쳤다. 미래형 자동차 부문에서 미국 제너럴모터스(4.9%)나 도요타(3.9%) 등과 정면 승부를 펼치기엔 힘이 달리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현재 고급 자동차에 장착되고 있는 충돌 예측 제어 기술, 자율형 안전 기술 등에 관한 국내 업체 기술력은 냉정하게 볼 때 독일, 일본의 70%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등 친환경차 부문의 기술력도 미국, 일본의 80∼90% 수준이다.

부품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연도별 총수출액은 2014년 266억40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55억5000만 달러로 이미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출액도 120억9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128억8000만 달러) 대비 6.1% 감소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부 특임교수는 “한국 자동차 업체는 아래에 딸려 있는 하청업체가 보통 3000∼4000개씩 있다”며 “노사 갈등으로 생산성이 하락하고 업체가 공장을 해외로 옮기기 시작하면 그 하청업체들도 따라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해외 공장들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 공장

국내 완성차 5개 사 중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자동차는 이미 외국 자본에 팔렸다. 글로벌 본사에서 각 공장의 생산성을 판단해 물량을 조절하기에 한국GM, 르노삼성 등은 매년 다른 나라 공장과 물량 확보를 위한 혈투를 벌여야 한다. 실제 고비용·저효율 문제가 심각한 호주에서는 포드가 올해 10월, GM과 도요타는 내년 말 생산공장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경쟁력의 핵심은 생산 비용과 리스크 수준이다. 한국 자동차업체들의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기에 노조 리스크마저 해소되지 않는다면 경쟁력 상승을 기대하긴 힘들다.

2014년 르노삼성 부산공장이 일본으로부터 닛산의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로그’ 생산 물량을 가져온 것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그해 9월부터 현재까지 20만 대 이상의 로그를 만들어 북미 지역에 수출했다. 작년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전년 대비 소폭(3만여 대)이나마 늘어난 이유다.

르노삼성은 현대·기아차나 한국GM에 비해 노사 갈등이 상대적으로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임금 교섭 시 진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난해 자동차업계 최초로 호봉제를 폐지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2014년 4월 방한 당시 “전 세계적으로 가장 경쟁력 있는 공장은 노조가 기업을 보호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이 로그 물량을 확보한 배경을 설명한 셈이다.
○ 노사 관계 회복부터 출발해야

국내 자동차업계의 노사 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우선 무너진 신뢰 회복이 첫 번째다.

노조 지도부의 임기를 늘리는 방법도 검토해 볼 만하다. 국내 노조법상 노조위원장의 임기는 3년 이내로 제한된다. 실제로는 2년마다 노조위원장이 바뀌는 곳이 많다. 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신임 위원장의 정치적 성향, 주안점, 관심 영역이 바뀌고 요구하는 바도 달라진다. 위원장 선거가 과열되면 무리한 공약도 난무한다. 노조위원장이 연임을 통해 약 8년씩 직무를 수행하는 도요타와는 대조적이다.

국내 한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단체행동권(노조)이나 직장폐쇄권(회사) 등 법으로 보장된 서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 최대한의 정보를 공유하고 합의점을 만들어 나간다면 불필요한 갈등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미래 지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면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근로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에 얻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얻어 가려는 성향을 보여 왔다”며 “기업도 노조가 떼를 쓴다고 주장하기보다는 서로 간의 신뢰를 돈독하게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이은택 기자
#파업#노조#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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