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의 역설 모르는 리더가 시간만 벌어준 기만적 한반도 평화
북한은 핵탄두 늘리고 미사일 개발… 소득주도성장에서 U턴할 생각 없는데
韓日 1965년 체제 허무는 최악 갈등… 안보와 경제 양면에 그림자 짙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업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마저 기만적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 핵협상은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다. 북한에 시간만 벌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북한이 그 사이 핵탄두를 12개나 늘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도의 근거를 따져 물을 필요도 없다. 내가 김정은이라도 그랬을 것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고 미국이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폭격기를 북한 동해 상공 깊숙한 곳까지 출격시킨 것이 문재인 정부 출범 몇 개월이 지나서다. 그 무렵 한 청와대 참모가 저녁 자리에서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고 거품을 물며 북한보다 미국을 성토하길래 그에게 “트럼프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전쟁을 하지 못할 자”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모든 방면에서 더 강한 압박을 유지해야 할 순간에 압박을 푼 것이 이 정부다.
우리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남북군사합의로 스스로를 무장해제하는 동안 북한은 우리 군이 궤도조차 추적하지 못하는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고 3000t급 잠수함의 건조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능력의 진전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군사훈련 중단한 것, 언제든지 재개할 수 있다”며 별거 아닌 듯이 말했다. 그러나 이제 한미 군사훈련은 우리 측이 재개를 요구해도 훈련비를 내지 않으면 트럼프는 응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전방과 해안에서 경계실패의 소식이 들려온다. 급기야 먼 하늘에서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 군용기에 의해 영공이 침범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터키는 군사력에서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도 2015년 11월 자국 영공으로 4km 정도 들어와 17초 정도 머문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시켰다. 우리는 러시아 조기경보기가 9km까지 들어오고 7분간 휘젓고 다녔는데도 조용조용 처리하고 있다.
트럼프처럼 거친 말을 할 때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정말 싸울 의사가 있으면 몽둥이를 뒤에 숨긴 채 부드러운 말을 할 것이다. 실전 같은 훈련을 하고 철통같은 경계를 하는 것은 전쟁을 원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의 역설적인 측면을 알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대로 위기와 평화를 판별하는 지도자를 둔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지난달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전망치를 2.5%에서 2.0%로 낮춘 데 이어 이달 들어 S&P도 2.4%에서 2.0%로 낮췄다. 국내에서는 29일 처음으로 하나금융투자가 2.0%의 전망치를 내놓았다. 2.0%는 차마 1%대를 언급하지 못하는 예의일 수 있다. 노무라 ING처럼 1%대 전망치를 내놓은 외국 증권사도 있다. 한국의 성장률은 2011년 이후 지난해까지 3% 안팎에서 오락가락하며 연평균 3%의 성장을 했으나 올해 처음 1%대 성장률로 추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케인스의 유효수요이론만 해도 투자를 늘려 투자수요와 소득수요를 동시에 끌어올리자는 것이지, 소득만 올려 수요를 끌어올리자는 것이 아니다. 소득주도성장은 꼬리가 몸통을 움직이겠다는 무모한 이론이다. 더 큰 문제는 소주성이 빚은 참혹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유턴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올해는 그나마 2% 성장이 희망으로는 남아 있지만 내년부터는 1%대 성장이 고착화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에서 나오고 있다.
한일 갈등이 안보와 경제 양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갈등의 근저에는 관제 민족주의가 깔려 있다. 그 민족주의는 심지어 편파적이기까지 해서 중국에 대해서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압박에 물러서고 미세먼지까지 내 탓을 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만사 네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재단을 해체하고 징용 배상 문제를 방치했을 때 무슨 복안이 있었던가. 대책 없이 스스로 불러일으킨 관제 민족주의의 관성으로 여기까지 왔다. 후대의 사가(史家)들은 이번 사태를 해방 이후 역사의 가장 어리석은 대목 중 하나로 꼽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12척은 귀양 갔다가 와보니 남은 배였다. 그 많은 배를 스스로 고물로 만들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국정농단을 우습게 보이게 만들 국정파탄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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