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그린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는 부당하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방송 심의 기준으로서의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의 의미 등이다. 전원합의체가 이에 대해 첫 판단을 내림에 따라 향후 또 다른 방송 매체 및 프로그램 등 유사 사례에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 방송사인 재단법인 시민방송이 방통위를 상대로 “제재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매체별,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반영해서 백년전쟁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심사한다면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개별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구체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객관성 등을 심사한다면 방송의 역할을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는 취지다. 즉, 방송 내용의 공정성 여부 등을 심사할 때는 매체별과 채널별, 프로그램별 특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시청자가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의 객관성과 공정성, 균형성을 심사할 때는 방송 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프로그램에 비해 심사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백년전쟁을 제작하고, 시민방송은 방송만 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기존에 입론된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 정도”라며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다”고 판단했다.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 두 고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 기사 등 자료에 근거한 것”이라며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적으로 진실과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백년전쟁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며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한 사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시민방송은 지난 2013년 1월부터 3월까지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두 얼굴의 이승만’과 ‘백년전쟁-프레이저 보고서’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이 전 대통령 사생활과 독립운동 성금 횡령 의혹, 박 전 대통령의 친일 발언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방통위는 해당 프로그램이 특정 자료만을 근거로 편향된 내용을 방송했거나 직설적이고 저속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등의 이유로 방송심의 규정상 공정성과 객관성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징계 및 경고 조치 등 제재를 가했고, 시민방송은 재심이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1·2심은 “특정 자료와 특정 관점에만 기인한 역사적 사실과 위인에 대한 평가는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의도적인 사실 왜곡이 될 가능성이 있다”며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루면서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다양한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애초 이 사건은 대법원 1부에 배당됐으나, 전원합의체로 회부됐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과 대법원장으로 구성되며, 소부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판례를 변경해야 할 때, 법리 등 중요 사안을 다룰 때 회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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