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마스크 대란을 공식 사과한 것은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한 현실을 인정하고 대책을 처음부터 다시 세우라는 주문으로 풀이된다. 그간 정부가 국내 제조업체들의 마스크 수급에 대한 분석도 없이 무턱대고 공급량이 충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가 혼란이 벌어진 점을 인정한 것이다. ○ “내일은 된다” 반복하다 공급 한계 인정
그동안 정부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공급이 문제없이 이뤄질 것”이라는 메시지만 반복적으로 내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우리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능력이 있다”고 말했고, 2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보고를 받고는 “마스크 수출 제한 조치로 (국내)공급 물량은 충분히 확보돼 있다”고 했다. 이어 28일 여야 4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도 “여러 대책을 내놓았으니 내일, 모레까지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정부를 믿어 달라”고 당부했다. 홍 부총리 등 관료들 역시 “하루 이틀만 기다려 달라”, “내일이면 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약속은 매번 지켜지지 않았다. 공적 판매처로 지정된 우체국과 농협하나로마트 등이 물량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에서 마스크가 풀린다”는 얘기만 돌면 금세 특정 장소에 긴 줄이 늘어서는 풍경이 반복됐다. 사실상 정부가 공급을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마스크 대책이 발표된 지 일주일이 지난 3일에도 소비자들은 약국, 하나로마트, 우체국에서 마스크를 충분히 사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방역은커녕 마스크 관리조차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 여론이 계속 커지자 결국 대통령이 다시 나서서 관련 부처를 강하게 질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시점에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3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고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마스크 대책이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아예 새로 짜야 한다는 지시를 한 것이다. ○ 전체 수급 관리 안 하고 보여주기식 단속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수급을 안정화하겠다면서 꾸려진 범정부 태스크포스(TF)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재부 주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관세청 등이 참여한 TF는 전반적인 공급 대책을 세우기보다 매점매석과 사재기 등을 단속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국세청은 마스크 유통업체에 대한 세무조사, 공정위는 끼워 팔기 등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검찰, 경찰까지도 마스크 관련 전담팀을 꾸리고 나섰다. 각 부처가 모여 운영되는 범정부 조직이 본질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사재기 등 일부 업자들의 불법 행위를 잡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처럼 각 부처가 ‘보여주기식 행정’에 힘을 쓰는 동안 정작 마스크 수급과 유통 등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컨트롤타워가 실종돼 있었다. TF 총괄을 맡고 있는 기재부는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매점매석 등을 단속하는 권한이 있을 뿐 마스크 생산이나 유통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식약처 역시 마스크 인허가 외에 유통 체계에 대해서는 상시 관리를 하지 않는 데다 차관급인 식약처장이 장관급 부처들을 진두지휘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처 간 조율이 안 되다 보니 엇박자도 나왔다. 식약처가 마스크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을 때 기재부는 마스크 수출 관리에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지난달 1∼20일 마스크 대중(對中) 수출액이 평소의 수백 배 규모로 폭증한 뒤인 26일에야 정부는 수출량을 국내 생산량의 10%로 제한하는 조치를 내놨다. 이에 지금까지 각 부처가 마스크에 관한 기본적인 통계자료조차 공유하지 않은 채 국민들을 ‘희망고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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