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살… 총살… 총살…’ 북한식 코로나 방역법[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5일 03시 00분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북한 소식통들을 통해 입수한 ‘처형’ 사례가 있다. 지금까지 입수한 사례는 3건이지만 더 있을 수도 있다.

북-중 관문인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지난달 16일 두 명이 총살됐다.

한 명은 압록강 철교 아래쪽 강성무역회사 전용 부두 담당 보위지도원이었다. 강성무역회사는 무연탄과 광물 밀수출 분야에선 최고 실적을 자랑하는 회사 중 하나로 전용 부두까지 갖고 있다. 이곳 국가보위성 소속 요원은 신의주에서도 끗발이 대단한 자리다. 그러나 코로나19 의심 증세 때문에 허망하게 총살됐다. 14일 그를 진단한 의사는 감염증 환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당시엔 믿을 수 있는 진단 키트가 평양밖에는 없었다. 환자를 평양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이송에 앞서 취조가 시작됐다. 북한은 1월 22일부터 국경을 폐쇄했는데 23일 뒤인 2월 14일에 증세가 나타난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취조를 하니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인과 접촉한 위법 행위가 적발됐다. 부두에 배가 많다 보니 밤에 몰래 중국에 가 밀무역을 하는 건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김정은은 2월 초 방역 규정 위반자에게 군법을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보위지도원은 감염자로 찍힌 지 이틀 뒤인 16일 총살됐다. 감염이 의심됐기 때문이 아니라 김정은의 지시를 감히 우습게 봤다는 죄로 본보기 삼아 죽인 것이다.

같은 날 총살된 또 다른 사람은 평안북도 보안국(경찰청) 간부였다. 그는 2월 10일경 격리된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건물 출입을 막고 나선 요원들과 시비가 붙었다. 평소 몸에 밴 갑질 근성이 발로해 “너 따위가 나를 막느냐”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이 간부는 현장에서 즉시 체포됐다.

당국은 도 보안국 성원들을 모이게 한 뒤 체포된 간부를 끌어내 견장을 뜯고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그 역시 김정은의 지시를 우습게 여겼다는 죄로 처형됐다.

방역 규율 위반자로 처형된 첫 사례는 지난달 초 북부 나선시에서 나왔다. 중국에 다녀와 격리됐던 무역일꾼이 몰래 대중목욕탕에 간 사실이 적발돼 곧바로 총살됐다.

운 좋게 총살형을 면한 간부도 있다. 평안북도 보위부 외사처장은 격리가 싫어 1월에 중국에 다녀온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숨겼다. 대좌(대령)급 간부인 그는 도 보위부에서 상위 5위 안에 드는 실세다. 그런데 그의 운전기사가 술에 취해 이 사실을 발설했다. 간부는 즉시 체포돼 신의주시 근처 협동농장 농장원으로 쫓겨났다. 그나마 처형을 면했으니 다행인지 모른다.

강성무역회사 보위지도원이 감염자로 의심된다는 보고는 문경덕 평북 도당위원장을 통해 김정은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김정은은 평양에서 유능한 의사 100명을 신의주로 파견하는 한편 신의주와 인근 동림군을 봉쇄할 것을 지시했다. 신의주 시당위원장은 통제를 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달 15일 해임됐다.

북한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는 1월부터 나왔다. 그러나 3월 초인 지금까지 북한에 감염자가 속출한다는 정보는 개인적으로 들은 바가 없다. 아무리 북한이 은폐의 달인이라 하더라도 여기저기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면 완전히 숨기긴 어렵다. 물론 의심되는 사람을 족쳐 위법 행위를 실토 받고 바로 처형하니 진짜 감염자라면 병원을 찾아가 검사받으려 할까 싶긴 하다.

북한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치사율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는 파라티푸스, 장티푸스,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퍼지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개 전염병에 무덤덤하다. 특히 감기 정도 걸렸다고 약도 없는 병원에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북한에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봐야 찾아내기도 어렵고, 진단도 어려울뿐더러 사람들이 크게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한에선 코로나바이러스 정도는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김정은은 대북 제재를 풀지 못한 창피스러움을 코로나 소동으로 두 달간 무마하고 사회 통제도 강화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사람들이 “코로나 환자가 없다면서 왜 아직까지 못살게 구느냐”고 불만을 가질 때다. 2일 김정은이 참관한 포사격과 3일 김여정의 원색적인 대남 담화는 그런 시각에서 봐야 한다. 코로나 통제로 지친 북한 인민들의 시선을 대남, 대미 도발로 돌릴 때가 온 듯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코로나19#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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