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56·수감 중)에 대한 청와대 감찰 중단을 지시한 혐의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대검찰청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51·사법연수원 27기)이 무혐의 의견을 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윤 총장의 대검 참모진을 대거 교체한 이른바 ‘1·8 대학살’ 인사를 한 이후 정권을 향한 수사를 놓고 대검 지휘라인 간에 시각차가 처음 드러난 것이다.
● “네가 검사냐” 대검 간부가 상관에 공개 항명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8일 자정 무렵 삼성서울병원의 대검 과장급 간부 가족의 장례식장에서 대검의 양석조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47·29기)이 심 검사장을 향해 “왜 조 전 장관이 무혐의냐”며 따졌다. 양 선임연구관이 심 검사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당신이 검사냐”며 큰 소리로 항의하자 주변에 있던 대검 지휘부와 검사들이 술렁였다고 한다. 동석한 일부 검사는 “청와대를 향한 수사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며 양 선임연구관에 동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 검사장은 13일부터 반부패강력부장으로 근무했고, 양 선임연구관은 지난해 8월부터 심 검사장의 전임인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함께 윤 총장을 보좌해왔다. 당시 조문객들 중에는 윤 총장도 있었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소동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1·8 대학살’ 인사로 대검 참모에서 지방으로 좌천된 박찬호 제주지검장과 이두봉 대전지검장 등을 포함해 40여명의 검사들이 있었다.
● “조 전 장관 기소 반대, 추 장관 고발 사건에 소극”
심 검사장은 윤 총장과 서울동부지검 관계자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조 전 장관의 유 전 부시장에 대한 감찰 중단 결정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권한 범위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장과 서울동부지검의 검사들, 양 선임연구관 등은 “법원에서도 범죄가 소명이 된다고 했다”며 기소 의견을 주장해 결국 검찰이 17일 조 전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심 검사장은 야당이 윤 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강행한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도 “일선 지검으로 배당하기 전에 대검에 죄가 되는지를 먼저 검토하라”고 지시하는 등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 검사장은 추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근무했고, 최근 인사 때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일각에서는 양 선임연구관이 검찰 내부 논의 과정을 공개석상에서 표출한 것을 두고 검찰 인사와 직제개편 등으로 위축된 정권 수사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16일 새로 부임한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앞에서 윤 총장의 취임사를 읽으며 “국민이 부여한 권한은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한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의 발언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 尹 “대검 중간 간부 전원 유임” 요구…秋, 입법예고 생략
법무부는 20일 오후 2시 검찰 인사위원회를 열어 검찰 중간간부 인사를 논의할 계획이다. 양 선임연구관을 포함한 대검의 차장과 부장검사급 인사 30여 명은 “인사이동을 원하지 않는다”며 ‘전원 유임’ 의견을 제출했다. 이들은 윤 총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 첫 검찰 중간간부 인사 때 대검에 부임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등 청와대를 향한 수사 등을 사실상 진두지휘했다. 대검 중간간부들은 “인사 후 5개월 만에 또다시 자리를 옮길 경우 전국 검찰청 사무를 총괄 조율하는 대검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유임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고위 간부 인사 때 아무런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던 윤 총장은 “대검 중간 간부를 전원 유임시켜 달라”며 추 장관에게 요구했다. 대검 참모진 8명 전원이 좌천된 8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달리 중간 간부 인사에서는 법무부의 물갈이 인사 폭을 최대한 줄이려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정권에 칼을 겨눈 참모들이 대거 좌천된 고위간부 인사 이후 총장을 보좌하는 중간간부들마저 물갈이 된다면 검찰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추 장관은 검찰 직제개편 안에 대해 통상 거쳤던 ‘입법예고’ 절차를 생략하고, 21일 국무회의에서 직제개편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입법예고를 할 경우 40일간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야 해 신속한 인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무회의에서 검찰 직제 개편안이 통과되면 설 연휴 전에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 검찰 중간간부 등의 필수보직 기간은 1년이지만 직제 개편 때는 조기 인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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